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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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淸道金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6. 19. 04:06
청도김씨(淸道金氏) 유래문 청도김씨 시조 영헌공(英憲公)의 휘(諱)는 지대(之岱)요 초휘는 중룡(仲龍)이며 경순왕(敬順王)의 9세손으로 고려 명종 20년 1190년 청도 대성리에서 태어나시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 육례지문(六藝之文)을 통달하였으며 공은 고종 5년 강동 지난에 태학생으로 대부종군하여 방패에 국환신지환(國患臣之患)이요, 친우자소우(親憂子所憂)라 대친여보국(代親如報國)이면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라는 순두시를 대서(大書)하여 종군하니 원수 조충(趙冲) 장군이 이를 보시고 경탄하였다. 개선하여 1219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을 시작으로 보문각교감, 진주목사를 거쳐 1240년 전라도안찰사로 이후 1258년 첨서추밀원사로 승진하시여 북계지병마사를 겸직하여 서북 40여성을 평정하였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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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동상(金正浩 銅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9. 15. 19:11
김정호 동상(金正浩 銅像) 김정호(金正浩, 1804~1866) 호(號)는 고산자(古山子)로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지리학자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지도제작에 뜻을 두어 마침내 1834년(순조 34)에 청구도를 편찬하였으며, 1851년(철종 12)에는 청구도를 대폭 수정 보완하여 목판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완성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산맥과 하천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고, 행정, 국방, 교통, 경제, 문화와 관련된 여러 요소들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또, 휴대가 간편하도록 22장으로 나누어 접을 수 있도록 제작된 과학적인 지도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조선의 전통적인 지도 제작술을 집대성하여 만든 가장 뛰어난 고지도(古地圖)이다. 이밖에 동여도(東輿圖) 및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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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 지도박물관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21. 9. 13. 19:15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1860년대, 목판본, 114.3cm✕64.8cm, 개인 소장 대동여지도가 제작되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로 고산자 김정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맥과 하천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였고, 군현의 위치 및 교통망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92 (원천동)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22첩으로 구성된 전국지도로서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의 뛰어난 점은 목판으로 간행하여 보다 많은 국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한 점과 분첩 절첩식으로 고안해 휴대와 열람에 편리하게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모든 산을 산줄기로 표현하여 산과 산에서 기원하는 하천의 흐름을 쉽게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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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 국보 제850-2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0. 27. 04:11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 국보 제850-2호 『대동여지도』의 여러 이본 중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지도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생몰년 미상)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이 지도는 조선의 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으면서 고지도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의 남북을 22첩으로 나누어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제작하여 모두를 아래 위로 맞추면 전국지도가 된다. 지도의 제1첩에는 방안표, 범례인 지도표와 지도유설, 경도오부지도 등과 함께 조선의 최북단인 온성(穩城), 종성(鐘城), 경원(慶源)일대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유설」에서는 중국의 지도와 지리지의 기원을 말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경제·국방·학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와 지리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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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地圖)의 달인...고산자 김정호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08. 8. 18. 21:02
지도(地圖)의 달인 -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鎬)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鎬) 선현의 출생과 사망연도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804년경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1866년경에 옥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분도 명확하지 않고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알 수 없으나, 살던 곳은 당시 남대문밖(현재 중림동 약현성당 부근)이었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외동딸이 있었다. 김정호 선현이 참고한 역대의 지도와 지리지의 대부분은 최한기와 최성환이 소장한 것, 그리고 신헌의 도움으로 볼 수 있었던 관청 자료들이었다. 필요에 따라 확인할 곳은 답사를 한 것으로는 추정되지만,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올라갔다는 설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김정호 선현의 옥사설은 상당히 넓게 퍼져 있으나 기록이 없으니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