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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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당간지주(無量寺 幢竿支柱) -충남 유형문화재 제5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13. 19:14
무량사 당간지주(無量寺 幢竿支柱) - 충남 유형문화재 제57호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이곳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무량사 당간지주는 천왕문 동쪽에 남아 있다. 마주 보는 기둥의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2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기둥을 받치는 바닥에 원형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돌기둥의 바깥면을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만수리) 무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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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김시습 부도(無量寺 金時習 浮屠) - 충남 유형문화재 제25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12. 19:56
梅月堂 詩碑(매월당 시비) 半輪新月上林梢(반륜신월상림초)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山寺昏鐘第一鼓(산사혼종제일고) 산사의 저녁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淸影漸移風露下(청영점이풍로하)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 이슬에 젖는데 一庭凉氣透窓凹(일정양기투창요)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 설잠(雪岑) ‘가을밤에 초승달을 보며(中秋夜新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강릉인(江陵人)으로서 세종 17년(1435) 서울에서 태어나 성종 24년(1493)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일생을 마친 문인이다. 어려서 신동의 이름을 떨쳐 앞날이 크게 촉망되었으나 단종 폐위라는 불의의 변고를 당하여 일신의 명리의 길을 버리고 천하를 방랑하는 시인으로 수도자로서 철저한 국외자의 길을 택하여 많은 기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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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초상(金時習 肖像) – 보물 제149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4. 19:57
김시습 초상(金時習 肖像) – 보물 제1497호 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을 그린 것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남은 생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구색과 짙은 갈색을 사용해서 대비되게 표현하였고, 수염은 검은색으로 섬세하게 그려 당시 초상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 어린 총명한 기운에서 김시습의 내면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초상은 역사적인 인물인 김시습을 그렸다는 사실 외에도 조선시대 야복(野服)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 야복(野服) : 벼슬에서 멀어진 사람을 뜻하는 야인(野人)이 입는 옷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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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및 석등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2. 04:25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은 신라 양식의 탑이 2층인 것과 달리 단층이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데, 이는 백제의 양식과 비슷하다. 이처럼 이 탑은 백제와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71년 해체 수리를 할 때 탑신에서 고려 시대 금동 아미타 삼존불상과 사리 장치, 금동 관음보살 좌상 등이 나왔다. 부여 무량사 석등(扶餘 無量寺 石燈) - 보물 제233호 부여 무량사 석등은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등이다. 석등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