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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영당(梅月堂 影堂)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7. 30. 06:00
매월당 영당(梅月堂 影堂)
이 영당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선생(金時習先生, 1435-1493) 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다.
본래의 영당은 현종(顯宗) 11년(1670) 경주부사(慶州府使) 민주면(閔周冕)이 선생의 뜻을 추모하기 위해선생이 은거하였던 용장사(茸長寺) 경내에 오산사(鰲山祠)를 지었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毁撤)되었다.
고종 15년(1878)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경주유림(慶州儒林)이 경주부윤(慶州府尹) 민창식(閔昌植)에게 청원하여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 경내에 다시 지었으나 그 후 퇴락하여 1998년 경주시에서 현재의 위치에 증건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봉행하고 있다.
선생은 세종(世宗) 17년(1435) 서울에서 태어나 신동(神童)으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단종(端宗) 3년(1455) 세조(世祖)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자 세상사에 뜻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歸依)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세조(世祖) 10년(1465)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저술하였다.
그 후 성종(成宗) 2년(1471) 경주를 떠나 일시적으로 환속(還俗)하였으나
성종 24년(1493) 충청도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일생을 마쳤다.
선생의 시호(諡號)는 청간(淸簡)이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
매월당 주련(梅月堂 柱聯)
乍晴還雨雨還晴(사청환우우환청)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是還毁我(예아변시환훼아)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잠깐 갰다가 다시 비오고 비오다 다시 갬이여
하늘의 道도 오히여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 실정이야
나를 칭찬하다 문득 도리어 나를 헐뜯고
이름을 피한다 하지만 도리어 스스로 명예를 구함이 됨이다.
꽃 피고 꽃 지니 봄을 어찌 관리하겠는가
구름이 가건 오건 산은 다투지 않네.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서 모름지기 기억하고 알게 하노라
기쁨을 취해도 평생동안 얻을 곳이 없음이로다.蓮(연) - 지문광조선사(智門光祚禪師)
煙籠檻外差差綠(연롱함외치치록) 안개는 난간 밖 올망졸망 연잎에 엉기고
風撼池中柄柄香(풍감지중병병향) 바람은 연못 위 송이송이 꽃봉우리 흔든다
多謝浣紗人不折(다사완사인부절) 고마운 것은 비단 씻는 여인들 꺽지 않아서
雨中留得蓋鴛鴦(우중류득개원앙) 빗속에 원앙 덮어 줄 연잎남아 있어라.'국내 나들이 > 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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