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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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석씨(慶州昔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2. 3. 04:09
경주석씨는 까치 작(鵲) 자에서 새 조(鳥) 자를 없애고 옛 석(昔) 자만 남겨 성으로 삼았다. 경주석씨(慶州昔氏), 월성석씨(月城昔氏)의 유래 - 석씨의 탄생 :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5년(박혁거세 52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 포구에서 석씨의 시조인 석탈해 왕이 탄생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탄생지에는 지방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된 탄강 유허비각이 있다. - 석씨의 창씨와 왕의 등극 : 탈해는 어려서부터 말과 글 그리고 지혜와 풍채가 뛰어나 남해 왕께서 소년을 입궐케 하여 대면하던 중 성과 이름이 없음을 알고 “소년이 처음 태어날 때 까치들이 우짖다가 그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아기만 남았으니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 자를 없애고 옛 석(昔) 자만 남겨 성으로 하고, 궤를 열고 알에서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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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密陽朴氏) - 대전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1. 12. 04:14
밀양박씨 유래(密陽朴氏 由來) 우리 박성(朴姓)은 신라를 건국하신 시조왕 박혁거세 거서간을 시조로 하여 2천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왕손으로 만파가 한 뿌리에서 시작된 순수한 단일 혈통이다. 서기 전 57년에 진한의 육부촌장이 모여 군주가 없음을 한탄하고 하늘에 기도하던 중 나정 숲속에 오색구름이 일고 말이 소리치며 신선이 엎드려 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찾아가니 말은 간 곳 없고 박과 같이 큰 알 모양의 포(胞)가 있어 이를 헤쳐보니 예쁜 아기가 탄생하여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아기의 얻음을 기쁘게 여겨 박과 같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朴이라고 하고 빛나게 세상을 산다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 나이 13세 육부 촌장이 받들어 왕으로 삼고 국호를 서라(徐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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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2. 29. 21:09
박혁거세(朴赫居世) ○ 생존 기간 : B.C 69년 ~ A.D 4년 ○ 주요 직위 : 신라의 개국 시조 (재위 B.C 57~AD 4) ○ 주요 업적 - 박씨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유민이 지금의 경상도 지방 산곡 간에 흩어져 살면서 형성한 급량(及梁) · 모량(牟梁 :혹은漸梁) · 사량(沙梁) · 본피(本彼) · 한지(漢祗:혹은 漢岐) · 습비(習比) 등 6족의 후예들이 사로국(斯盧國)을 형성, 양산촌(楊山村) · 고허촌(高墟村) · 진지촌(珍支村) · 대수촌(大樹村) · 가리촌(加利村) · 고야촌(高耶村) 등 여섯 마을의 왕으로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고, 박혁거세란 ‘선도수련을 통해 크게 깨달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분이라는 의미임. - B.C 37년 경주(서라벌)에 금성(金城)을 쌓고, 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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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박씨(咸陽朴氏) - 대전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1. 22. 04:09
함양박씨 문중 유래(咸陽朴氏 門中 由來) 함양박씨(咸陽朴氏)는 경상남도 함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박씨의 시조는 신라 시조왕 혁거세(赫居世)이다. 경명왕(景明王)의 9왕자 중 8대군(大君)이 각 고을에 분봉되었는데 첫째분이 밀성대군(密城大君), 둘째분이 고양대군(高陽大君), 셋째분이 속함대군(速咸大君), 넷째분이 죽성대군(竹城大君), 다섯째분이 사벌대군(沙伐大君), 여섯째분이 완산대군(完山大君) 일곱째분이 강남대군(江南大君), 여덟째분이 월성대군(月城大君)이다. 함양박씨의 시조는 함양의 옛 이름 속함으로 분봉된 속함대군 언신(彦信)이며 후손인 고려 예부상서 선(善)이 중시조인데 중시조를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묘는 함양읍 남산에 있고 재각은 영명재(永明齋)이며 신도비가 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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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州朴氏 由來(충주박씨 유래) - 대전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0. 28. 21:12
忠州朴氏 由來(충주박씨 유래) 충주박씨는 신라 시조대왕 朴赫居世(박혁거세)를 元祖(원조)로 하고, 고려 副正(부정) 朴英(박영)을 貫祖(관조)로 한다. 1474년 僉正 原昌(첨정 원창)이 충주박씨 족보를 편찬하셨으니, 현존하는 한국의 최초 족보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 脫解 尼師今(탈해 이사금) 11년에 박씨 귀족으로 하여금 州(주), 郡(군)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여 州主(주주) 또는 郡主(군주)라 하였고, 진흥왕 18년에 와서는 忠州(충주)를 小京(소경)이라 하고 그다음 해에 貴戚子弟(귀척자제)와 六部豪民(육부호민)들을 이곳에 옮기게 되니 충주의 土姓由來(토성유래)는 신라로부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 貫祖(관조) 副正公(부정공) 이상은 여러 차례의 병화를 겪어 문적을 잃어버려 알 길이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