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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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답사를 마쳤습니다.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19. 04:11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僧園)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僧園)은 대한민국의 산사 7곳을 묶어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대한민국의 13번째 세계유산으로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결정되었다. 등재목록(유네스코 지정번호) 1562-001 통도사(通度寺) - 경남 양산 1562-002 부석사(浮石寺) - 경북 영주 1562-003 봉정사(鳳停寺) - 경북 안동 1562-004 법주사(法住寺) - 충북 보은 1562-005 마곡사(麻谷寺) - 충남 공주 1562-006 선암사(仙巖寺) - 전남 순천 1562-007 대흥사(大興寺) - 전남 해남 산사한국의산지승원 통도사(通度寺) 통도사는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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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속리산 법주사) – 유네스코 세계유산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0. 7. 30. 21:15
법주사 일주문(法住寺 一柱門) 속리산 법주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불법(佛法)을 향한 일심귀의(一心歸依)를 뜻하는 이곳 일주문은 승(僧)과 속(俗)이 하나 됨을 의미한다. 법주사 일주문 정면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적힌 현판이 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통틀어 으뜸 사찰이라는 뜻이다. 뒤쪽 현판에는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라고 쓰였다.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報恩 俗離山 事實記碑)는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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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報恩 法住寺 四天王 石燈) - 보물 제15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27. 04:28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報恩 法住寺 四天王 石燈) - 보물 제15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은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다. 석등은 높이가 3.9m이며, 받침돌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밑받침돌과 위 받침돌이 대칭을 이루도록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화서석은 8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 4면에는 창을 내고 다른 쪽 4면에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지붕돌은 8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두던 받침이 남아있다.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으로 조각된 것으로 보아 혜공왕(765~780) 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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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대웅보전(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 보물 제915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26. 04:16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 보물 제915호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시 불타 버린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 402.80㎡, 높이가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건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보은 법주사 소로비로자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사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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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報恩 法住寺 石造喜見菩薩立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25. 19:16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報恩 法住寺 石造喜見菩薩立像) - 보물 제1417호 보살상은 전체 높이 213cm 규모로 크게 신체, 공양물, 대좌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가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받침돌을 그 위로 중심부에 해당하는 몸통을 세워 고정시켰다. 얼굴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 옷의 표현 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시기인 72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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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세조길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20. 7. 25. 04:05
세조길 눈썹바위 세조가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자리로,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를 피하던 장소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사람의 속눈썹을 닮았다 하여 눈썹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마음을 수양하며 속리사(俗離寺) 達磨岩畔一燈明(달마암반일등명) 달마암 가에 등불 하나 밝혀두고 開戶燒香思更淸(개호소향사갱청) 문열고 향사루며 마음 다시 맑히네 獨坐夜深無蒙寐(독좌야심무몽매) 홀로 깊은 밤 앉아 잠 못 이루자니 窓前流水雜松聲'(창전유수잡송성) 창 앞 물소리 솔바람과 함께 들리네. 고려 충숙왕 때의 인물인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이 속리사의 정토 공간에 찾아와 향화(香火)로 마음을 수양하면서 라는 시를 남겼다. 세조의 뉘우침 속리산 법주사는 약 3000여 명의 스님이 살았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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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비(下馬碑)와 화소비(火巢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0. 7. 24. 21:58
하마비(下馬碑)와 화소비(火巢碑) 하마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 이르러서는 탈 것에서 내리라는 표지석이다. 궁궐이나 종묘, 관아 등의 앞에 세웠다. 법주사에도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 ‘火巢(화소)’라 쓰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소’란 산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수목이 없게 조성한 공간을 말한다. 즉, 능원이나 묘 등의 울타리 밖에 있는 풀과 나무를 불살라 버린 곳이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능이나 태실이 조성될 경우 특정 거리까지는 화소 구간과 금양지로 설정이 되어 자연경관을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주사에는 주변에 수목이 가득하다. 따라서 화소를 새겨놓은 것은 이곳에서는 불을 사용하지 말라는 화재 경계지 임을 의미한다.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함으로써 화재를 예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