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
척화비(斥和碑) - 조선 1871년(고종 8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2. 27. 19:36
척화비(斥和碑) - 조선 1871년(고종 8년)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는 비석 19세기 후반, 조선은 농민들의 봉기와 제국주의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에 직면했다.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을 대신하여 실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후,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것을 선언했다. 이 척화비는 서울 종로에 세웠던 것으로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
옛 보신각 동종 (옛 普信閣 銅鐘) - 보물 제2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0. 8. 04:17
옛 보신각 동종 (옛 普信閣 銅鐘) - 보물 제2호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