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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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2. 19:11
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世宗 英陵 神道碑)는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452년(문종 2)에 세운 비석이다. 현재 비신이 심하게 부식되어 표면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 비문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비문을 지은 정인지와 글씨를 쓴 이용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다. 이수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마주 보며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으로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조각되었다. 1469년(예종 1) 영릉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면서 서울 영릉에 있었던 신도비와 석물(石物)을 묻었다. 1691년(숙종 17)과 1738년(영조 14)에 영릉 신도비가 노출되었는데, 논의 끝에 다시 묻어 두었다. 1974년 옛 영릉 터를 발굴하여 비신과 이수를 발견하였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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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성왕 기념탑(世宗聖王 記念塔)국내 나들이/탑(塔) 2021. 12. 21. 19:19
세종성왕 기념탑(世宗聖王 記念塔) 세종성왕 기념탑(世宗聖王 記念塔) 이 탑은 우리나라 역사상 으뜸가는 위인이요, 드높은 은인이신 세종성왕의 마음과 위업을 온전하게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기념탑이다. 세종성왕은 단기 3730년 음력 4월 10일(서기 1397년 양력 5월 15일)에 태어나시어 스물두 살의 나이인 3751년 음력 8월 10일(1418년 양력 9월 18일)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모셔져 32년 동안 나라의 바탕을 닦고 겨레문화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신 뒤 3783년 음력 2월 17일(1450년 양력 4월 8일) 쉰네 살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릴 때부터 그 용모가 단아하고 자질이 총명하셨으며, 성행이 돈독 근면할 뿐만 아니라 학문을 부지런히 하셨고 어버이에 대한 효성과 동기간의 우애도 누구에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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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상(世宗大王 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0. 19:12
세종대왕 상 이전 기념비(世宗大王像 移轉 紀念碑) 세종대왕은 단기 3730년 5월 15일(음력 4월 10일) 한양 준수방에서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시어 스물두 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모셔져 3783년 4월 8일(음력 2월 17일) 쉰네 살로 돌아가실 때까지 서른두 해 동안 백성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신의를 중히 여기는 도덕의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고도의 과학 문화 의식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한편, 연구에 직접 참여하시고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훈민정음 창제 반포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도덕, 예술, 의학, 군사, 외교 등 그 어느 방면할 것 없이 빛나는 문화를 창조하시어 꽃피웠으며 겨레의 생존발전에 영구히 다함없는 은덕을 끼치신 배달 겨레의 가장 위대한 성왕이시고 인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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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스승 묘비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18. 19:09
한힌샘 상주 주시경 스승의 무덤 주시경 선생은 자신의 호 백천(白泉)을 순수한 우리말 이름인 ‘한힌샘’으로 지어 부른 것으로 유명했다. 4209.11.7 황해도 봉산군에 나서 4247.7.27. 서울 내수동에서 죽다. 4293(1960년). 10. 1 서대문밖 고택골서 이곳에 옮겨 모시다. 아들 : 삼산, 백산, 왕산 딸 : 송산, 춘산 손자 : 영철, 영일, 영석 손녀 : 영진, 영옥, 영애, 소영 외손 : 이완영, 고관주 외손녀 : 이옥희, 이옥련, 고경애 주시경 스승 묘비 주시경(周時經) 스승은 서기 1876년 11월 7일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 무릉골에서 태어나시어 19세 때인 1894년에 서울에 올라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닦고 이로부터 20년 동안 우리말 글 연구와 교육 및 한글 운동을 하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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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시계(漏刻, 누각)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7. 19:07
물시계(漏刻, 누각) 물시계는 물통(播水壺, 파수호)에 물을 담아 물 받는 통(受水壺, 수수호)에 물이 드는 대로 자(簡, 간)가 떠올라서 자의 눈금을 가지고 시간을 알도록 한 것이다. 물시계의 역사는 이미 신라 성덕왕 때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 20년(1438)에는 더 정밀한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물시계는 중종 31년(1536)에 주조(鑄造)된 것으로 현재 덕수궁에 보전되어 있는 것을 1/2로 줄여서 만든 것이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옥외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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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구 영릉 석물(舊 英陵 石物)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6. 19:1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구 영릉 석물(舊 英陵 石物) 영릉은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과 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를 모신 왕릉이다. 처음에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지(吉地)가 아니라는 논의가 있어 예종 원년(1469)에 현재 영릉이 있는 여주로 옮겼다. 이때 능을 치장했던 석물을 운반하기 어려워 가져가지 않고 땅에 묻었는데, 1970년대에 발굴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석양, 석마, 망주석, 장명등, 석인상, 혼유석, 세종대왕 신도비 등 현재 남아있는 석물은 1974년에 이곳 세종대왕 기념사업회로 옮겨왔다. 품목과 수량이 처음과 다르고 일부 부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구 영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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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서울 청계천 수표(淸溪川 水標)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4. 21:06
보물, 서울 청계천 수표(淸溪川 水標) 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세종 23년(1441년)에 청계천에 설치했다. 이에 대해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돌로 만든 수표에 척촌(尺寸)의 숫자를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수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수표교 위쪽 가운데 물속에 있었는데, 청계천을 덮으면서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가 1973년 지금의 자리로 가져왔다. 이 수표는 커다란 받침 위에 육각기둥을 세우고 연꽃 문양을 새긴 덮개를 얹은 구조이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육각의 긴 면을 향하게 하여 물살의 저항을 줄였다. 기둥에 10자까지 눈금을 파고 앞뒷면에는 숫자를 새겼는데, 눈금의 간격은 주척(周尺) 1자로 평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