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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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 어린이 상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18. 20:11
정재수 어린이 상 눈이 길길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정재수(鄭在洙, 1964~1974) 어린이는 아빠를 따라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읍니다.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드리려 할아버지 계신 큰아버지댁으로 가는 길이었읍니다. 지팡이로 눈을 헤치며 걸어가던 아빠가 추위를 못 이겨 눈 위에 쓰러지시자,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덮어 드리고 꼭 껴안아 녹여 드렸으나, 끝끝내 피어나지 못하셨으며, 재수마저 아빠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두었으니, 그의 뺨에 얼어붙은 눈물을 내려다보며 흐느껴 운 것은 새파랗게 질린 겨울 하늘의 별들이었읍니다. 눈처럼 깨끗하고 별처럼 빛나는 재수의 효심은 눈이 녹고 봄이 되자 새싹이 돋아나서, 이 세상 모든 어버이와 아들딸들에게 어린 효자의 따사로운 마음이 겨울을 녹여 주었음을 알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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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어린이 상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14. 20:18
이승복 어린이 상 1968년 12월 9일 밤, 계방산 화전마을 외딴집에서 이승복(李承福, 1959~1968) 어린이는 호롱불을 켜고 숙제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강원도 평창군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장 2년생이었읍니다. 승권이 형은 아우인 승수랑 승자랑 화롯가에 둘러 앉아 오손도손 옥수수 알을 따 모으고 어머니는 웃방에서 짐을 챙기고 계셨읍니다. 공비 등살에 살 수가 없어 외딴 집들이 딴데로 이사를 가서 한 군데 모여 살기로 된 것입니다. 그날은 바로 열 번째 맞는 승복이 생일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읍니다. 울진 삼척에 공비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는 닭, 소, 돼지를 마구 잡아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듣고 온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총칼 든 공비들이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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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장군 동상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13. 19:10
을지문덕(乙支文德, 생몰년 미상) - 고구려 대장군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위지문덕(尉支文德)’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에서는 그의 세계(世系)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조선 후기의 저술인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을지문덕은 평양 석다산(石多山) 사람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으나, 후대의 기록이므로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612년 살수(薩水: 지금의 청천강)에서 수나라 별동대(別動隊) 30만을 격멸시킨 이른바 살수대첩을 거둬 위기에 처한 고구려를 구하고 불세출의 명장(名將) 반열에 올랐다. 612년(영양왕 23) 수(隋)나라는 양제(煬帝)의 총지휘 아래 대규모의 군단을 편성해 고구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하였다. 이때 육군은 고구려의 주요 군사거점인 요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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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황금알을 품다.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1. 11. 12. 20:10
서울, 황금알을 품다. 재질 : 철구조물, 철망, 돌멩이 크기 : 420cm X 245cm X 306cm 제작연도 : 2009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2009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 서울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도시갤러리는 고해(苦海)를 넘는 시민들의 희망에 불을 밝히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 사업의 일환인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 프로젝트는 "희망의 힘(Power of Dreaming)"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시민참여 프로젝트였다. 우리 전통문화는 간절한 소망을 돌에 담아왔다. 돌에 소원을 빌거나 소망의 돌탑을 쌓았다. 그런 전통을 추억하며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꿈과 소망을 모으고 쌓아올렸다. 시민들이 직접 소망을 적은 돌이 하나하나 쌓이고 태그(tag)가 매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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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선 어린이대공원역국내 나들이/역(驛)으로2 2021. 11. 12. 19:11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어린이대공원(세종대) 역은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전철역으로 역명은 인근에 어린이대공원과 세종대학교가 있는 것에서 정해졌다. 1996년 10월 11일 7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다. 서울 지하철 7호선(또는 수도권 전철 7호선)은 경기도 의정부시의 장암역에서 인천광역시 서구의 석남역을 잇는 61.3km의 서울교통공사와 인천교통공사의 도시철도 노선이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지하 210 (화양동) 꼬모와 함께하는 임산부 배려 캠페인 비워두고 배려하고 양보해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양보해 주세요.” 수영장에 풍덩 수박 모양 튜브에 누워 수영을 하는 사진을 찍어요. 풍선 타고 하늘여행 풍선 볼을 붙잡고 하늘을 나는 사진을 찍어요. 미용실에 왔어요 미용실 의자에 앉아 파마머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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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古堂 曺晩植 先生 銅像)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1. 11. 21:12
전면 제자 : 대통령 박정희 조각 : 민복진 동상 명문 : 주요한 글씨 : 김기승 1976년 12월 7일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세움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 건립기금 헌납자 명단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古堂 曺晩植 先生 銅像)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0-1-16 고당 조만식 선생은 1883년 2월 1일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시어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독실한 신앙과 숭고한 인격, 투철한 의지와 실천궁행 하는 자력갱생 정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과 자유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은 살아있는 교훈이다. 업적으로는 평양 산정현교회와 기독교청년회 또는 오산, 숭인, 숭실학교와 관서 체육회 및 조선일보 등 교육, 언론, 문화 산업 등에 미쳤다. 해방 후 북한 정치 수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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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선생상(南岡 李昇薰 先生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10. 20:14
동상 좌대에는 민족의 선각자들이 태극기를 치켜들고 독립을 부르짖는 모습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서력 1864년 갑자년 3월 25일에 평안도 정주 본집에서 여주 이석주(驪州 李碩柱)씨 둘째 아들로 나니 모친은 홍주김씨라 어리어서부터 밝고 참되니 사람들의 믿음을 받다 중년에 무역상으로 이름이 높아진 것도 이 갸륵한 인격이 신용의 밑천이 된 것이다. 1907년 정미년 6월에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과 만나 뜻이 서로 맞아 신민회에 들고 향지에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세우고 일변 마산동에 자기(磁器)회사를 세우니 모두 나라 일이라 이로부터 선생의 국가적 생활이 시작되다. 1919 기미년 33인의 하나로 옥에 들어간 것까지 옥에 가기가 세 번이요 있기가 전후 아홉해 선생의 백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