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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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리 해수욕장(長耕里 海水浴場)국내 나들이/해수욕장(海水浴場) 2022. 2. 12. 19:07
장경리 해수욕장(長耕里 海水浴場) 자갈과 모래가 혼합되어 형성된 해변으로 백사장의 길이는 약 1km 정도이고, 주변에는 100년 넘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장경리해수욕장. 쟁갱이(장경리 마을) 유래 영흥도 국사봉(國思峰) 서쪽 해안지대로 과거에는 국사봉 아래 한우물까지 조수가 들어왔고, 간조 때에는 넓은 갯벌이 보이던 곳으로, 뻘 동북쪽에는 ‘염벗‘이 설치되어 소금을 생산하였다. 질이 좋고 많은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 쟁기를 대고 뻘을 갈아엎어야만 했다. 이때, 뻘의 면적이 넓고 작업하는 구간이 길다하여 장경리(長: 길 장, 耕: 밭 갈 경, 里: 마을 리)라고 불려진 지명이 억양 변화로 쟁갱이로 불렀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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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대교와 수협수산물직판장어부들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22. 2. 7. 21:14
영흥대교(靈興大橋)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선재도와 영흥도 간에 건설된 연육교인 영흥대교는 2001년 11.15일 완공된 교량으로 길이 1,250m, 너비 9.5m의 왕복 2차로이며, 주탑 높이 80m, 주경 간 240m로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斜張橋, 탑에서 비스듬히 친 케이블로 거더를 단 다리)로 총사업비는 1700억 원이 들었다. 진두선착장 영흥도 수협수산물직판장어부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109-7 (내리) 영흥도(靈興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에 위치한 영흥도(靈興島)는 원래 명칭은 연흥도(燕興島)였는데, 1392년경 고려(高麗)가 망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고려 왕족의 후예인 익령군(翼靈君) 왕기(王琦)가 가족들을 데리고 개경을 탈출하여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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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익령군길(靈興島 翼靈君路) - 십리포 해변길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20. 9. 5. 19:07
영흥 익령군길(靈興 翼靈君路) 십리포해변길(내1리) 영흥도(靈興島) 이야기 영흥도의 명칭은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영흥도에 피신 정착하여 살고 있는 동안에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인 국사봉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靈興島)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십리포지명에 관한 유래 십리포해수욕장은 '영흥도 선착장에서 10리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해서 십리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 십리포해변은 인천광역시에서 서남방으로 약 32㎞ 떨어진 영흥도의 북쪽에 위치한 해변으로써 해변의 총길이가 1km, 폭 30m의 왕모래와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특이한 지역으로 해변 서쪽으로는 기암괴석이 길게 뻗어져 잇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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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첩보부대 영흥도전적비(海軍諜報部隊 靈興島戰績碑)일상생활속에서/나라사랑 2020. 9. 4. 19:28
해군영흥도전적비 해군 영흥도지구 전투 전사자(1950년 8월 13일 ~ 1950년 9월 15일) 중위 임병래, 박동진, 홍시욱, 이삼재, 김재경, 홍희표, 탁영각, 김용추 대한청년단방위대원(1950년 9월 14일 전사) 강태원, 강대원, 박준석, 김상식, 김성옥, 노재후 해군 영흥도전적비 건립개요 건립기관 : 해군본부, 집행부대 : 해군 제9513부대, 설계자 : 이일영(남산미술원), 시공자 : 원풍종합건설(주) 글 : 정우용, 비명글씨 : 청람 전도진, 제막 : 1992년 12월 2일 해군 영흥도 전적비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괴의 불법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1950년 9월 15일 세기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로써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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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전망대(대청도)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18. 11. 15. 19:30
매바위 전망대(대청도)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 매바위 전망대에서 본 사탄동(沙灘洞, 모래울) 해수욕장 매바위의 유래 매바위 전망대에 올라 경관을 바라보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형상을 닮은 매바위가 보입니다. 예로부터 대청도는 송골매의 일종인 '해동청'의 채집지였다고 합니다. 대청도 서내동(대청1리)에는 "매막골"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어, 예로부터 매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매막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귀족층에서는 매사냥이 성행하였는데, 고려 충렬왕은 매 사육 및 매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을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매사냥 매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빠른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송골매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새로 먹이를 쫓아가는 속도가 370km/h까지 체크가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