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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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15. 04:08
청도 선정비군(淸道 善政碑群) 북문 공북루(拱北樓) 서문 무회루(撫懷樓) 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 읍성 면적 : 6,570㎡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이는 대략 1m 정도이고 길이는 10m 정도이다. 성곽의 축조연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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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사적비(李忠武公 事蹟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2. 17. 22:05
李忠武公紀念閣(이충무공기념각) 大韓民國 初代 副統領 李始榮 謹書(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근서) 李忠武公舜臣紀念碑(이충무공순신기념비) 東萊 鄭寅普 撰(동래 정인보 찬) 安東 金忠顯 書(안동 김충현 서) 忠武李公紀念碑(충무이공기념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이충무공 사적비(李忠武公 事蹟碑) 이충무공 사적비는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1598)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이충무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국민의 성금으로 세운 비이다. 비석을 보호하는 건물인 비각은 정면 한 칸, 측면 한칸 크기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비각 안의 비석은 화강암으로 된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운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글은 정인보가 지었고, 글씨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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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1. 14. 20:07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 생존 기간 : 1545년 ~ 1598년 ○ 주요 직위; 조선시대의 명장, 삼도수군통제사 ○ 주요 업적 - 임진왜란 때 왜군 함선의 서해 진입을 막는 등 나라를 구하고 ‘거북선’을 발명함. - 옥포해전(일본 수군과 첫 해전, 30여 척 격파), 사천포해전(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격파), 한산도대첩(적선 70척 대파), 부산포 해전(적선 100여 척 격파), 명량대첩(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0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격파하는 대승), 노량해전 등에서 승리를 이끌면서 근대 해전의 효시가 됨. ○ 주요 어록 - 必生卽死 死必卽生(필생즉사 사필즉생) 싸움에서 이겨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 不如早死也(불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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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佛狼機)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5. 22. 20:31
불랑기(佛狼機) 서양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진 서양제 화기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하였다. 여러 개의 자포(子砲)를 연속 사격할 수 있는 매우 발전된 신식 무기이다. 불랑기란 "Frank"의 어원으로, 화포의 명칭이 아니라 ‘포르투갈’ 나라명이다. 중국 명나라 무종(武宗) 정덕(正德 1506~1521)년간 광동성에 출현했던 포르투갈 함선에 비치되었던 이 화포는 동(銅)으로 주조 되었으며, 길이는 5~6척(1.5~1.8m)이고, 큰 것은 천여근, 작은 것은 50여근이다. 사거리는 약 3km에 달했으며, 구조상의 가장 큰 특징은 화포(母銃, 모총)에 큰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소총(子銃, 자총) 다섯 개를 번갈아 가면서 한 개씩 삽입하여 돌아가면서 사격할 수 있게 제조되었다는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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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 사적 제14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8. 04:14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 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는 1,095m의 퇴뫼식 산성과 산 정상부에 복원되어 있는 권율(權慄) 장군의 승전과 관련된 장대(將臺)를 말한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오산과 수원, 화성에 걸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독산성은 백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여주 파사성, 용진 토성 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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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대(洗馬坮, 洗馬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3. 04:19
세마대 중건기(洗馬臺 重建記)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된 고성으로서 선조 25년 임진왜란 시 삼남의 용병 13만 대병이 일시 집결하였던 요새지이다. 그후 도원수 권율장군이 유진하여 식수 부족의 위기 모면책으로서 백미로 백마를 목욕시키는 양의 묘안이 병법으로서 왜적 3만 여명을 격퇴하고 3천병마곡에서 격멸하였다. 그후 이곳에서 권율장군은 변이중으로 하여금 우리나라 최초의 화포를 발명 제조케하여 이 화포로 행주대첩의 대과를 거두었다. 임진왜란 후 조정에서는 이곳에 세마대를 장엄하게 세우고 석대산을 세마산이라 칭하여 병기창을 두어 무예연습을 하게하고 방어사 유진장 독산성별장 등을 서수하였다. 영조 26년 9월 26일 대왕이 친림 순행하시고 군기 수련을 엄명하시어 더욱더 완강하고 비조불입의 석성이 둘러싸여 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