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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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26. 04:05
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398년 태조 7년에 창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시 병화로 불탄 것을 다시 재건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모시고 그 양편에 사성과 공자의 열 제자인 십철 즉,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 자유, 자하를 비롯하여 육현을 배향하였다. 동쪽에 있는 동무에는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쪽에 있는 서무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흔,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 모두 18명의 위패를 모셔놓고 옥천의 유림들이 매년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2월과 8월 첫 번째 정일(丁日)에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8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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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1. 20:05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 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사마소는 효종 5년(1654)에 의창(義倉)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堂) 안에는 관성사마안(管城司馬案), 향약계안(鄕約契案), 옥천군향약계규약(沃川郡鄕約契規約) 등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 편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왼쪽으로는 온돌방, 부엌을 두었다. 사마소는 전국에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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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0. 20:10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곳 명륜당(明倫堂) 내삼문(內三門) 홍도당(弘道堂) 대성전(大成殿) 서무(西廡) 동무(東廡) 명륜당의 온돌 장치, 아궁이와 굴뚝 옥천향교 명륜당의 특징은 공중에 떠 있는 아궁이다 2층 양쪽 교관의 방구들을 데우는 온돌 장치로 열이 아궁이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고 그 열이 가능한 한 구들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굴뚝은 작은 구멍을 내어 처리하였으며 아궁이 주변은 허공인 것이 인상적이다. 아궁이의 불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궁이 면은 낮게 하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 부분은 높게 설치하여 앞에서 뒤로 갈수록 오르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고직사(庫直舍) 고직사는 옥천향교의 관리사로, 최근 지붕 누수, 처마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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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옥주사마소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8. 04:10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 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사마소는 효종 5년(1654)에 의창(義倉)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堂) 안에는 관성사마안(管城司馬案), 향약계안(鄕約契案), 옥천군향약계규약(沃川郡鄕約契規約) 등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 편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왼쪽으로는 온돌방, 부엌을 두었다. 사마소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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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1. 19:14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報恩 法住寺 碧岩大師碑)는 법주사를 크게 중창(重創)한 조선시대 중기의 고승인 벽암대사(1575~1660년)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현종 5년(1664) 5월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정두경이 지었고,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썼다. 커다란 암반 위에 홈을 파서 세웠으며 규모는 높이 213㎝, 폭 110㎝, 두께 35㎝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선종(禪宗)의 승려이며 승병장(僧兵將)인 벽암대사는 임진왜란 때에 해전에 참여하였다. 인조 2년(1624)에는 남한산성을 쌓을 때 8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하였다. 이후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승군 3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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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0. 19:16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報恩 俗離山 事實記碑)는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정봉(水晶峰)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다고 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동국(東國, 한국) 명산에 큰 거북의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재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거북 모형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