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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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국내 나들이/전시관(展示館) 2022. 3. 16. 20:11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 4년(1395)에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별 1,467개의 위치를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만든 천문도(天文圖, 별과 별자리 그림)이다. 윗부분에는 해와 달의 운행기록과 별자리 그림, 아랫부분에는 우주관, 제작 배경,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적혀 있다. 이것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본떠 1999년 5월에 만들었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 (왕대리) 영릉 세종대왕 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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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릉(貞陵) - 사적 제208호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1. 5. 27. 21:45
정릉 아리랑시장 정릉(貞陵)과 흥천사(興天寺) 이야기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릉 – 조선 제1대 태조비 신덕왕후 능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궁에서 가까운 곳인 황화방(현재의 정동)에 웅장하게 능을 조영(造營)하였다. 1409년(태종 9)에 도성 안에 있던 정릉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1669년(현종 10)에 정릉으로 복권되면서 지금과 같이 조성되었다. 흥천사 - 조선 제1대 태조비 신덕왕후 원찰(願刹)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1395년(태조 4) 왕이 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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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靑磁 ‘淳化四年’銘 壺) - 국보 제326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1. 30. 19:43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靑磁 ‘淳化四年’銘 壺) - 국보 제326호 고려 태조의 태묘 제1실의 향을 피우던 높이 35.2㎝의 항아리로 최길회가 만들었다 『고려사』에 보면 태묘는 고려 성종 8년(989) 4월 15일에 착공해서 성종 11년(992) 12월 1일에 만들었으며, 이 항아리는 태묘가 준공된 이듬해인 ‘순화 4년〈성종 12년(993)〉’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에 태묘 터가 있지만, 이 항아리의 출토는 알 수 없다. 항아리의 굽 밑에 ‘순화 4년…’으로 시작되는 18자의 글이 새겨져 있다. 유색은 청자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은 담록빛을 띠는 회색 계열이며, 바탕 흙은 회백색의 자기에 가깝다. 형태와 유약 등의 특질을 보면 중국 당나라 후기 5대의 중국 월주 청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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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12굽이 가파른 고갯길, 말티재(말티고개)국내 나들이/영(嶺)현(峴)치(峙)천(遷) 재,고개 2020. 7. 9. 04:25
말티재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안내 대한 8경의 하나로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이 된 속리산 길목 해발 430m에 열두 굽이 말티재가 있다, 정상은 한남금북정맥 으로 고갯마루 동쪽은 남한강, 서쪽은 금강 수계 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남쪽 능선은 갈목재를 거처 천왕봉에서 백두대간과 만나고 북쪽 능선은 국사봉을 거처 미원고개를 지나 청주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이 말티재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14년 (서기 553년) 의신조사가 인도를 다녀오는 길에 법주사를 창건하려고 흰노새 등에 불경을 싣고 넘어간 이래 1464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깨우치러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으니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애환이 서려 있을까? 혜공왕때 진표 율사는 금동미룩대불을 세우려고, 고려 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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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릉(建元陵) - 조선 제1대 태조 이성계의 능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1. 1. 22:30
건원릉(建元陵) -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능 조선 제1대 왕인 태조(太祖,1335~1408,재위1392~1398)는 함경도 영흥(永興)에서 태어났고, 1392년에 조선을 창건한 후 1408년에 돌아가셔서 이곳에 안장되었다. 태조 건원릉은 조선을 창업한 군주의 무덤답게 동구릉 중에서 유일하게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대형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다. 본래 태조는 먼저 돌아가신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을 도성 안에 조성하면서 자신이 묻힐 터로 삼았으나, 태조의 아들인 태종이 이 지역에 건원릉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건원릉을 관리하기 위하여 재궁(齋宮)으로 개경사(開慶寺)를 세워 태조의 명복을 빌었다. 태조는 돌아가실 때 자신의 무덤에 고향에서 나는 억새(청완,靑薍)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