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 사적 제302호 낙안읍성(樂安邑城)의 유래(由來) 순천(예전 승주) 낙안읍성의 유래는 조선 태조 6년(139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왜구의 침입으로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은 것이 그 시초이다.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 ..
낙안읍성 우물(큰샘) 낙안읍성 우물(큰샘) 이 우물은 옛날 낙안군수(고을 수령)님이 드셨다 하여 큰샘이라 불리어 오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낙안읍성(樂安邑城)이 행주형(行舟形)으로 성내(城內)에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을 금(禁)하였으며 낮은 곳에서 나오는 우물을 길러 쓰도록 하..
낙안읍성(樂安邑城)의 낙민루(樂民樓) 낙안 낙민루는 조선 헌종때 군수 민중헌(閔重憲 1845∼1846)이 중건하였으며 (또는 조용현(趙溶鉉)이 중수하였다고 함)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3명루로서 1924년 일부분을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낙안 군민과 함께 희로..
낙안읍성(樂安邑城)의 동헌(東軒), 사무당(使無堂) 조선 왕조때 지방관아 건물로서 감사(監事), 병사(兵使), 수사(水使), 수령(守令) 등이 지방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중앙 마루는 송사(訟事)를 다루던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초 건립 연대나 퇴락한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
낙안읍성(樂安邑城)의 남문, 쌍청루(雙淸樓), 진남루(鎭南樓) 낙안읍성 성곽의 남문으로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도 하며, 낙안읍성에 건립된 성문 중 가장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성문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쌍청루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
낙안읍성(樂安邑城)의 동문, 낙풍루(樂豊樓) 낙안읍성의 동문인 낙풍루(樂豊樓)는 1834년(순조4) 성균관 진사 김호언이 사비 1,400량을 들여 중건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문루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일제 식민 통치하에 관리 소홀하여 퇴락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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