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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樂安邑城)의 낙민루(樂民樓)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4. 12. 1. 04:22
낙안읍성(樂安邑城)의 낙민루(樂民樓)
낙안 낙민루는 조선 헌종때 군수 민중헌(閔重憲 1845∼1846)이 중건하였으며 (또는 조용현(趙溶鉉)이 중수하였다고 함)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3명루로서 1924년 일부분을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낙안 군민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루각 이었으나 여순 병란 당시 좌익들에 의해 지서가 소실되어
낙민루 에서 임시 경찰 업무를 수행하던 중 6. 25가 나자 공산군들이 낙민루를 불태우고 말았다.
공산군들이 낙민루를 불태우는 것을 보면서 당시엔 그 누구라도 이를 말릴 수는 없는 일로서
그 애석함을 남내리 거주 한신 신천우(申天雨)씨는 이렇게 그 순간을 글로 써 두었다.
"경인(庚寅)년 음력 8월23일 이른 아침 불길에 쌓인 낙민루 이제는 영원히 보지 못할 낙민루야
모든 면민이 슬퍼 탄식하고 애석함을 금치 못하나 이를 어찌 말릴수 있으랴.!!"
이렇게 해서 낙안의 보물 하나를 잃어 버렸으나 1986년 낙안읍성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초석 위에 3간, 측면 2간, 17평 규모의 겹처마 팔작집의 누각형으로 내부 본부에는 모로 단청하였고
현판은 전(前) 승주군수 남송(南松) 신계우(申季雨)씨가 썼으며 옛 자리에 다시 복원하였으나
옛 것만 같지 못하다고 그때를 아는 분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낙민루 앞뜰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이곳을 사람들이 구정(九停)뜰 이라고 한다.
조선조 때 낙안이 나주부에 속한 군으로서 나주 부사가 각 군을 순회하시는데
아홉번째 들려 쉬며 머물렀다 하여 구정(九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여 온다.
낙민루운(樂民樓韻)
드높은 비각(碑閣)에 머루가 아름답고 붉은빛 푸른색이 번쩍 번쩍 새롭구나.
백오절(百五節)이 오니 버들잎을 피우고 천리밖에 노니는 사람을 게을러지게 하네.
한밤에 피리 북소리 봄을 알리고 땅에 두른 안개와 꽃은 모든 집이 봄이라네.
드넓은 난간 머리에 예나 이제나 뜬 달은 의연한 충민공(忠愍公)의 옛 정신이어라.
- 임자(壬子), 중춘(仲春), 김순철(金淳鐵) -
위의 시는 낙민루를 노래한 것이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남내리, 서내리 3개 마을로 이루어진 낙안읍성(樂安邑城)은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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