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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허리 돌고돌아 아흔아홉 굽이길...대관령(大關領) 옛길
    국내 나들이/영(嶺)현(峴)치(峙)천(遷) 재,고개 2008. 5. 19. 20:53

    산허리 돌고돌아 아흔아홉 굽이길....대관령(大關領) 옛길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되어 있어 산악국가이며 또한 고개도 많다. 그 많고 많은 고개 중에 대관령만큼

    유명한 고개는 없을 것이다. 대관령을 넘는 방법은 셋이다. 첫째는 영동고속도로, 두 번째는 구 영동고속도로인 456번 지방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용하던 대관령 옛길이다
      
    대관령(大關嶺, 832m)은 강원도의 유서 깊은 고을인 강릉과 역사를 같이해온 백두대간의 큰 고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개로서 영동 지방의 관문이 된다.

    고갯마루에 서면 동쪽으로 동해와 강릉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 나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광경이다.

     

     

    대굴대굴 굴러가던 ‘대굴령’ 고개
     
    강릉 토박이 노인들은 대관령을 아직도 ‘대굴령’이라 부른다. 너무 험해 ‘대굴대굴 굴러 내리는 고개’라는 뜻이다.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노송들이 짙은 숲을 이룬 옛길엔 여행길의 안전을 빌었던 돌무덤과 주막터 등 정겨운 풍경이 많다.

    강릉이 고향인 신사임당도 어린 율곡을 데리고 이 고갯길을 넘었고, 역시 강릉 출신으로서 소설 <홍길동전>으로

    당시 사회모순을 비판했던 허균도 이 고갯길을 걸으며 숨을 골랐다.
     
    조선시대까지 이용하던 대관령 옛길은 강릉 구산(丘山)에서 반정(半程)을 거쳐 대관령 너머 서쪽의 횡계(橫溪)까지를 말한다.

    이 중 현재까지도 비포장으로 온전히 남아있는 옛길은 제민원(濟民院)이 있던 현재의 대관령박물관 앞에서부터 구 영동고속도로

    (456번 지방도)와 만나는 신사임당 사친비 앞의 반정까지 5km 구간이다.

    여기에 대관령 수호신을 모신 국사성황당까지의 1km 산길을 합하면 총 6km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강릉 구산에서 대관령을 넘자면 ‘장승거리’와 ‘굴면이’, ‘제벵이’, ‘원울이재’, ‘반젱이’, ‘윗반젱이’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

    장승거리는 구산 서낭당에서 어흘리쪽으로 가는 길가에 장승이 서 있어서 얻은 지명이요, 굴면이는 대관령 정상에서 나귀나 말등에

    짐을 싣고 험한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여러 번 뒹굴었으나 이곳에 오면 길이 좋아 뒹구는 것을 면한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윗굴면이 지나 만나는 야트막한 원울이재는 옛날 강릉으로 부임하거나 강릉을 떠나던 고을 원님들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는 곳이다.

    ‘윗반젱이’라고 불리던 반정은 횡계와 구산의 중간 지점이라는 뜻인데, 옛날엔 이곳에 주막이 있어 길손들이 쉬어가기도 했다.
     
    대관령 옛길 남쪽에 솟은 제왕산(帝王山, 840.7m)은 고려말 우왕(禑王, 1364~1389)이 ‘공민왕의 핏줄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는

    이성계의 주장에 몰려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 왔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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