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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골 공예품인 "강화 화문석(花紋席)"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08. 10. 4. 06:00

    왕골 공예품인 "강화 화문석(花紋席)"

     

    화문석(花紋席)은 꽃돗자리라고도 하는데, 신라시대부터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였던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로 오면 송(宋)나라 사람들이 고려의 수출품 중 화문석을 인삼과 더불어

    가장 좋아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또한 원(元)나라에서는 고려의 만화문석(滿花紋席)을 깔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로 오면 조정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선사품 중 수량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중국에 비해 그 규모는 적으나 일본에도 보내졌다.

     

    제작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그 중 강화(江華) 화문석으로 대표되는 완초화문석(莞草花紋席)은

    실을 고드레에 감아 자리알을 대면서 엮어나가는 노경소직법(露經疎織法)으로 제작되며,

    오늘날 사라진 등메는 돗자리처럼 실을 촘촘하게 건 뒤 바늘로 자리알을 꿰어넣으면서

    바디로 쳐서 다지는 은경밀직법(隱經密織法)으로 제작되었다.

     

    8월 상순에서 9월 사이에 거둔 왕골을 바짝 말린 후 다시 하루쯤 물에 담갔다가 속을 칼로 훑어낸다.

    물들인 왕골은 문양에 따라 한 단씩을 한 죽으로 엮어 건조한 곳에 걸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뽑아쓰며,

    자리에 올리기 전 왕골이 부서지지 않도록 물에 적신다.

    세 사람이 너비 예닐곱 자의 화문석 한 장을 짜는 데 5일 정도 걸린다.

    용, 호랑이, 원앙, 봉황, 학, 매화, 모란 등 수복(壽福) ·부귀(富貴) 등을 상징하는 문양을 사용하였다.

     

     

            

    화문석 문화관을 방문하면 화문석은 물론 왕골공예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다양한 왕골공예품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현지 공예인들과 함께 화문석과 왕골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화문석(花紋席)이란 말 그대로 왕골을 염색한 후 자리에 꽃무늬를 수놓아 짜내려간 자리다.

      이밖에 왕골제품으로 화방석, 꽃삼합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시대흐름에 맞춰

    가방, 모자, 열쇠고리 등 소품이 생산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생활문화유산인 왕골(일명:완초) 공예품은 강화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순백색의 왕골을 재료로 만드는 대표적인 수공예품으로써 우리 조상의 멋과 슬기로움이 가득 담겨있는

    우아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전국 유일의 민예품이다.


     

     

    전국 유일의 왕골공예품인 강화 화문석은 고려시대부터 전수된 생활문화 유산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만 생산되는 자랑스런 민족 문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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