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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사랑/문화예술(文化藝術) 2008. 10. 12. 15:56

     궁중음식.. 자궁과 대전의 상차림

     

    제45회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중인 2008. 10. 10 ~ 10. 12【3일간】화성행궁 유여택(維與宅)에서는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궁중음식 상차림 전시,혜경궁홍씨 하루의 상차림, 정조대왕 석수라 상차림,

    현재적 의미 가치를 살리는 자궁/대전 상차림 재구성,궁중음식 시연 및 시식 한마당, 궁중음식 시식 품평회가 열렸다.

     

     

    궁중의 음식에 관한 기록 중 가장 특수한 것이 정조 19년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이다.

    이 <의궤>는 사도세자비인 혜경궁 홍씨의 육순을 맞이하여 정조가 수원에 있는 화성과 현륭원에 나가서

    육순잔치를 거행한 음식상을 기록한 것이다..

    의궤 권4의 찬품(饌品)조에는 윤 2월9일부터 16일 환궁하기까지의 8일간의 행로에 따라

    자궁이나 왕족에 올린 식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의궤에는 일상식으로 반수라상, 죽수라상, 미음과 반과상이 나오고,

    연회식으로 봉수당 진찬연((進饌宴)과 양로연(養老宴)의 찬품들이 나와 있다.

    이는 진찬 외에 궁중의 일상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더욱 중요하다.

     

     

     

     

    수라(水刺)는 고려 때 몽고에서 온 왕비에 의해 전해져 궁중어로 되었는데

    대전(왕)과 중전(왕비)에 올리는 진지를 이른다.

    왕의 자제들은 진지(進止), 궁인이나 내외빈은 반상(飯床)이라고 구별하여 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첩(접)이라는 음식의 가지 수가 기(器)로 표시되어 있다.

     

    하(蝦) 수라는 자궁(혜경궁 홍씨)에게 13∼14기를 올렸으나 대전(정조)에게는 7기를 올렸다.

    같은 왕족이라도 청연(淸衍),청선(淸璿) 군주에게는 대전과 마찬가지로 7기가 올려졌으나 진지라 했다.

    이 원행에는 왕족 외에도 각 궁인이나 내.외빈, 군사 등 동원된 많은 인원이 각기 또 다른 형태의 상차림과

    그에 따른 음식 가지 수, 담는 용기 등도 달리 하였다.

     

    한국은 오천년의 역사를 내려오면서 조선왕조에 이르러서 가장 화려하고 발달된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에 관하여는『경국대전(經國大典)』과 『이조왕조실록』과 『진연의궤(進宴儀軌)』,

    진작의궤(進爵儀軌)와 『궁중음식 발기』등의 문헌을 통해 의례의 상세함과

    특히 기명,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명과 음식의 재료 등을 알 수가 있다.

     

    궁중에서는 평상시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朝飯)과 조반(朝飯) 석반(夕飯)의 두번의 수라상(水剌床)

    그리고 점심때 차리는 낮것상과 밤중에 내는 야참(夜食)으로 다섯 번의 식사를 올린다.

    낮것(晝物床)은 점심과 저녁사이의 간단한 입매상으로 장국상 또는 다과상이다.

    세번의 식사 외에 야참으로는 면 약식 식혜 또는 우유죽(酪粥) 등을 올렸다.

    현재 전하여지는 수라상차림은 한말 궁중의 상궁들과 왕손들의 구전에 의해 전하여진 것으로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수라상차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영조실록에는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고래로 하루에 다섯번이다.'라고 적혀있으나

    영조는 검박(儉朴)하여 오식(午食)과 야식(夜食)을 두번 줄여서 하루 3회로 하였다고 한다.

     

    ‘영조실록’은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고래로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과 아침저녁 때의 두 차례에 걸친 수라상, 점심때의 낮것상,

    그리고 야참(夜食)까지 총 다섯 번의 식사를 말한다. 

    이른 아침 초조반으로는 미음, 응이, 죽 등을 가볍게 먹었고,

    아침수라(朝水剌)는 오전 10시경, 저녁수라는 5시경에 들었다.

    낮것상에는 간단한 장국상이나 다과상을 올렸고, 야참으로는 면, 약식, 식혜 또는 우유죽 등을 올렸다.

     

    궁궐 안에는 대전, 대비전, 세자전, 대왕대비전 등 전각이 각각 따로 있었고,

    각각의 전각마다 수라간이 딸려 있어 제각기 딸린 주방에 수라간 나인들이 배속되었다.

    임금은 평소 침전에서 수라를 들었으니 경복궁에서는 교태전에서, 창덕궁에서는 대조전에서 수라를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과 윤비는 겨울에는 대조전의 등온돌(순종의 침실)에서, 여름에는 대청마루에서 수라상을 받았다.

    순종과 윤비는 겸상이 아니라 나란히 일자로 앉아 각각 독상을 받아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주방상궁들이 평상시의 수라상 음식을 만들었고,

    궁중 잔치 때는 대령숙수(待令熟手)라는 남자 조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었다.

    솜씨 좋은 숙수는 대부분 대를 이어가며 궁에 머물렀고, 그 중엔 왕의 총애를 받은 이도 많았다.

    조선말, 나라가 망한 후 숙수들이 시중의 요정(料亭)으로 빠져나가 일하게 되면서

    궁중의 연회음식이 일반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평상시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주로 주방 나인들이 담당했다.

    주방 나인은 다른 처소의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13세에 입궁하여 궐 안에서 윗 상궁을 스승처럼 모시며 견습한다.

    관례는 입궁 후 15년이 지나서 치르는 것이 원칙으로 일종의 성년식이자 결혼식이나 다름없다.

    관례 후 정식 나인이 되며 다시 15년이 지나야 상궁의 봉첩을 받는다.

     

    수라상은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 두 가지씩과 김치, 조치, 찜 등 12가지 찬물로 구성된다.

    백반(白飯)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두 가지를 수라기에 담는다.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두 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려 그날그날 먹고 싶은 수라와 탕을 고를 수 있게 한다.

    조치는 토장조치와 젓국조치 2가지를 준비하고 찜, 전골, 침채 3가지와

    청장, 초장, 윤집(초고추장), 겨자집 등을 종지에 담아 차린다.

    쟁첩(반찬그릇)에는 12가지 찬물을 사용해 육류, 어패류, 채소류, 해초류 등

    다양한 식품재료로 조리법을 각각 달리하여 만든 반찬을 담는다.

    더운 구이, 찬 구이, 전유화(전유어), 편육, 숙채(나물), 생채, 조리개(조림),

    장과(장아찌), 젓갈, 마른찬 그리고 별찬으로 회와 수란 등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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