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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원평야의 요새(要塞)...백마고지
    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08. 11. 12. 05:11

    철원평야의 요새(要塞)...백마고지

     

    강원도 철원군 북방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동란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 동안에 걸쳐 대 혈전이 계속되었던 백마고지 전투는

     

    피아의 포탄낙하가 30만발이 작렬했고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중부전선 최대의 격전지였다. 

     

    이곳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어 2개 사단이 완전 와해되고 말았으며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흙먼지와 시체가 뒤엉켜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피아 간의 포격으로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백마고지를 바라볼 수있는 곳에 설치 된 안내판

     

     

    철원 평화전망대에 미니어처 모형으로 설치된 "백마고지" 주변

    민통선 안에 위치하고 있어 가볼 수는 없지만 백마고지 전적지 주변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백마고지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를 가는 길이 호젓하게 느껴진다.

     

     

     

          

    395고지라고도 하는 백마고지는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인 휴전선 북쪽 민통선안에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심한 포격으로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白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 10월 6일 부터 6월 15일에 걸쳐  정예군으로 알려진 중공군 제38군이 국군 제9사단(사단장 金鐘五 소장)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에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덩 곳이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 1개 군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1개 사단 병력을 잃었으며,

     

    아군(국군9사단)도 약3,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둔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UN)군은 휴전 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백마고지 수도고지 저격병능선 934고지 잭슨고지 등 십수개의 유명 고지로 연이어져 있는

     

    철의 삼각 전적지는 6·25한국전쟁 때 시산혈하의 현장이었다.

     

    전 전선이 혈전장이었고 피아간에 수십만이 희생됐다.

     

    특히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사에 신화처럼 크게 기록됐다.

     

    해발 395m의 백마고지는 철원평야를 통제하고 남북을 연결하는 길목의 요새이다.

     

    백마고지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독전에 나섰던 김일성이 고지를 빼앗기고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애통해 했다는 이 접전은 그만큼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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