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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중한 문화유산 ... 설경(雪景)의 화성장대(華城將臺)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09. 1. 25. 21:09

    귀중한 문화유산... 설경(雪景)의 화성장대(華城將臺)

     

    화성장대(華城將臺)는 수원의 중심부인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의 시설물인데 일명 서장대(西將臺)라고도 한다.

    유좌(酉坐) 묘향(卯向)인 화성장대는 위에 올라가서 굽어보면 팔방으로 모두 통한다.

    용인 석성[석성산]의 봉화와 황교(皇橋)[대항교]의 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한 성의 완급과 사벽(四壁)의 허실은 마치 손바닥 위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산 둘레 백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고 위에 층각(層閣)을 세웠다. 
    앞쪽 대석은 4층인데 전체 높이가 5척이다. 댓돌은 3개인데 층계는 4개이고 대의 너비는 98척이다.

    대 아래의 동서로 42척의 거리를 두고 좌우에 크고 붉은 의간[杆][큰깃대] 한 쌍을 나누어 세웠다.

    상대(上臺)의 너비 87척 높이 2척이고, 아래 층각의 규모는 9간인데 가운데 한간은 사방 13척 2촌이다.

    밑에는 판자를 깔고, 연잎 평난간으로 둘렀으며, 뒤쪽에는 분합을 드리웠다.

    문지방 위에 임금께서 쓰신 큰 글자[화성장대(華城將臺)]로 편액을 붙였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는 지휘본부로서 일명 화성장대라고도 불리어 진다.
    1784년(정조 8년) 화성축조 당시에 세워진 2층의 대(臺) 위에 누각(縷閣)이 있었고,

    뒤에는 노대(弩臺), 옆에는 군무소가 있었다. 위층은 사면에 교창을 내고 판자를 깔았다.

    당초 건물에는 정조의 친필로 <화성장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당시의 건물은 퇴락하여 없어지고

    석단과 초석만이 남아있던 것을 1971년에 다시 원형과 같은 건축양식으로 장대 와 노대를 복원하였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화성 표지석

     

                     수원의 중심부인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西將臺)는 조선시대 이 지역 군사를 총지휘하던 곳으로,

                     일명 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도 부른다.

                     화성(華城)과 함께 사적 3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건축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화성은 조선 성곽제도의 최고 완성형이다. 한국 성곽 발달사 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수원 화성은 석성과 토성의 장점만을살려 축성됐다.

                    화성 축성에 매달린 선조들은 한국 성곽의 약점을보완하기 위해 중국과 서양의 축성술을 본뜨기도 했다.

     

                     화성장대(西將臺)는  장수가 성 안팎을 두루 살피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곳인데 이곳에 서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인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외간’이다. 서장대 앞에 세워진 높은 깃대를 이르는 것으로 여기에 매단 깃발에 따라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이 있는지, 행사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화성장대 바로 앞의 ‘황색기'는 장수기로 지휘관이 서장대에 있다는 의미이고, ‘흰색기'는 병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병조판서가 머물고 있다는 뜻이며, ‘龍旗(용기)'는 왕이 지휘할 때 걸었다고 함


     

                     장대(將臺)는 말 그대로 장수가 올라가 전투를 지휘하는 곳으로, 화성의 서장대는 서쪽에 있는 장대다.

                     보통 성안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는 장대는 대개가 누각으로 지어져 경관이 좋고 건축미도 빼어나다.

                     남한산성의 서장대(수어장대)와 진주성의 남장대(촉석루), 화성의 서장대(화성장대)와 동장대 등이 유명하다.

     

                    화성장대(서장대)에는 조선 후기 문화중흥을 이뤘던 정조(1776~1800년)의 부국강병 꿈과 효심이 서려 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긴 정조는 1794년 자립적인 혁신 새도시

                    화성 건설에 나서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다. 현재의 수원이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조성된 도시이다.

     

                     일제시대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실됐던 화성의 많은 시설물 등은 1975년 복원공사로 원형을 찾았다.

                     화성 건축의 전말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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