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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화성행궁(華城行宮)"
    수원사랑/화성행궁(華城行宮) 2009. 1. 25. 21:12

    설경(雪景)속의 화성행궁(華城行宮)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읍치를 원래 있던 화산(花山)에서

    팔달산(八達山)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하였으며 당시는 54칸의 규모였다.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긴 후 원행 시에는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필요한 건물들을 증수한 것인데,

    1794년 화성 축성이 시작될 때에는 112칸, 화성 축성이 완성된 1796년에는 총 576칸으로 증수되어

    장대한 규모를 이루었으니 궁궐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화성행궁의 정당 건물인 봉수당은 평상시에는 수원유수의 집무공간이지만 왕이 행차하면 왕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이 이루어지게 되고 남낙헌에서는 양로연이 베풀어졌다.
    행궁은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는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시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

    즉 강화행궁, 의주행궁,남한산성 행궁이 그것이며, 휴앙을 목적으로 한 온양행궁,

    능원을 참배하기 위한 대표적인 행궁으로 화성행궁이 그것이다.
       정조의 화성행차시에는 당시 워낙 원행이어서 중간 중간에 작은 규모의 행궁을 설치하였는바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과천 길로 원행 할 때 거처로 사용), 시흥행궁,

    안산행궁(과천길이 너무 멀어 시흥길을 만들면서 행궁을 만듬. 말하자면 곡선길을 직선길화 시킨 것임)이 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의 건물 배치와 주변 경관을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는 자료로는, 순조 1년(1800)에 간행된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도설(華城全圖圖說)"과 작자미상의 규장각 소장본"화성행궁도(華城行宮圖)"가 있다.
    이들 자료에 묘사된 화성행궁의 전체 그림을 보면, 행궁은 팔달산 정상 서장대 아래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지고, 시가지가 열리는 곳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성내 중심부를 이루는 곳에 자리잡은 행궁은 그 우측 뒷편에서 시냇물이 앞쪽으로 흘러내려,

    전면 우측에서 좌측으로 흘러가는 형국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그 후편의 산기슭은 물론 좌·우의 담장 내외에는 소나무·버드나무 등을 비롯한

    여러 수종을 식수하여 아름답고 운치있는 조경을 이루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화성행궁은 앞쪽으로 긴 장방형이며 홍살문을 지나 정면 중앙에 안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정문인 신풍루(新豊樓)가 있고, 신풍루의 후면으로 정서(正西) 방향에 좌익문(左翊門),

        그 뒤로 중양문(中陽門)과 봉수당(奉壽堂)이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신풍루에서 좌익문·중양문·봉수당은 화성행궁 배치에 있어서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나머지 건물들은 이 중심축의 좌우에 약간 비대칭적인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성행궁은 팔달산 기슭, 성내 중심부를 이루는 평지에 동향(東向)을 하고 앉아서 신풍루·좌익문·중앙문·봉수당 등의

    건물이 중앙의 동서방향의 중심축을 이루고, 그 좌우로 여러건물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장청 좌측의 별주와 행궁 후면 팔달산 기슭에 위치한 미로한정·내포사 등까지 포함하여,

    화성행궁을 구성하는 건립된 건물들은 행랑을 제외해도 22채나 이를 만큼 매우 웅장하면서도,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운치있는 전체도를 나타내고 있다.

    행궁의 주요 건물들은 몇 개의 회랑(廻廊)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경유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머물던 임시처소를 말한다.    

    화성행궁은 한국의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사적 제3호)의 부속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뒤주에 갇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과 효심으로

    화산에 세운 능(현륭원)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정조의 이러한 원행은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행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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