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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표상 "다산 정약용선생"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09. 2. 22. 19:30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표상 "다산 정약용선생"

     

    실학 정신이 살아있는 역사의 고장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시대를 초월한 참스승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숨결이 살아 있다.

     

    다산 유적지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곳에 있다.

     

    다산이 태어나 자란 곳이며 세상을 떠나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양주시에서는 이곳을 다산 유적지로 조성하여 보존하고 있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곳에는 전남 강진 유배기간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천일각,

     

    선생의 실학정신을 형상화한 조형물,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쓰였던 거중기 모형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목민심서"의 글귀를 새겨놓은 원통형 기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선의 기품 있는 선비이자 실학자인 다산 선생은 22세에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다산은 1801년 황사영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강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18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이때 선생이 지내던 곳이 바로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이다.

     

    이곳에서 다산은 후학을 가르쳤고 책도 많이 썼다.

     

     

     

     

     

     

    다산의 저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마과회통 등이 모두 다산이 지은 저명한 책이다.

     

    그 가운데 "목민심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고을의 수령, 즉 목민(牧民)이 지켜야 할 내용을 쓴 책이다.

     

    다산은 동상에서도 책을 들고 있는데 아마 목민심서인듯...

     

     

     

     

    다산의 "목민심서"는 지금 이 시대 지방관들이 한번쯤 읽어 보아야할 필독서가 아닐까.

    다산은 지방관으로 있던 때의 체험과 강진으로 귀양가 있을 때에 보고 들은 여러 가지 사실에 기초하여,

    지방 관헌의 윤리적 각성을 도모하고 농민경제의 정상화를 위하여 "목민심서"를 지었다고 한다.

     


     

     

    목민심서가 쓰여진 당시는 지방관리들의 부정부패, 수탈이 극심했던 시기이다.

    오늘의 사정은 다른 것일까?  뇌물과 청탁, 이권개입 등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오랜 관료사회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판 매관이라 할 수 있는 유권자들에게 돈을 돌리거나 향응을 제공하는 금권선거는

    다산시대의 매관(買官)과 같은 것은 아닌지?

    이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청렴, 절약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과거 매관한 수령들처럼 본전 이상의 이득을 얻기 위해 유권자들을 위한 행정을 펴기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사상(政治思想)

     

    임금은 백성을 위하고(爲民思想),군자는 자신을 바로 세운 후에

    남을 다스리는(修己治人)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선생의 정치사상은

    오늘날 지도자가 걸어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경제사상(經濟思想)

     

    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을 제시하고 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정책인 여전제(閭田制),

    정전제(井田制)를 제암,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조세 부담의 공평성을 기하는 등

    능률적인 경제운영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사회사상(社會思想)

     

    폐단과 부패로 어지러운 봉건시대에 핍박받는 민생의 편에서 사회제도를 백성을 위한 혁명적 개혁으로

    주창하고 신분제 개혁,서얼제도(庶孼制度) 철폐 등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사회,능력위주의 사회를 주창한

    다산의 모습 속에서 모순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고뇌했던 참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사상(科學思想)

     

    서양의 천문,지리,농사정책,수리 기술,측량법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이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실용론을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거중기, 프리즘, 종두법을 발전시키는 등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과학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문학사상(文學思想)

     

    진실은 삶의 맥락에서 권력에 저항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때 아름답습니다.

    참된 지식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사회의 폐해를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경륜의 정신이 담긴 다산의 문학은 이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교육사상(敎育思想)

     

    개혁은 치산(발전)을 위함인가 재산(평등)을 위함인가의 물음에 다산은 결론적으로 치산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연구하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實學)교육을 주창,

    민생과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는 학문교육으로 교육의 정도(定道)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으로서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甫)이다.

    그리고 초자는 귀농(歸農)이며 호는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

    탁옹(翁) ·태수(苔)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이고 가톨릭 세례명 요안이다.

    또 시호는 문도(文度)이며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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