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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과 같은 용도의 "녹로(轆轤)"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09. 5. 3. 21:30
크레인과 같은 용도의 "녹로(轆轤)"
긴 장대 끝에 도르레를 달고 끈을 연결하여 돌을 높이 들어올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높이가 11m에 이른다.
수원 화성 축성에서 2좌를 만들어 사용한 이후 각종 궁궐공사에도 사용하였다.
녹로(轆轤)는 거중기와 마찬가지로 공사 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데 사용하였던 기계이다.
하지만 거중기가 도르레를 이용하였던 것에 반해 녹로는 활차(滑車)를 사용하였다.
1803년에 창덕궁 인정전을 재건할 때와 1857년에 인정전의 중수 공사를 할 때에도 녹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으로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이 녹로는 수원화성박물관 앞 야외정원에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정약용은 화성 축성 당시 녹로를 발명해 이용했다.
녹로는 줄 끝에 돌을 묶고 반대편에서 도르레에 걸린 줄을 잡아당겨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도록 고안됐다.
녹로(轆轤)는 활차(滑車 : 도르레)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이다.
조선 후기에 성을 쌓거나 큰 집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크레인이라 할 수 있다.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틀의 앞쪽으로 긴 지주(支柱) 구실을 하는 간목(竿木) 둘을 비스듬히 세운 다음,
간목 꼭대기에는 활차를 달고 나무틀의 뒤쪽에는 얼레를 설치하여 동아줄을 얼레와 활차에 연결하고
줄의 반대쪽에 물건을 달아맨 뒤, 얼레를 돌려 줄을 감으면서 물건을 들어올리도록 한 것이다.
녹로는 1796년(정조 20) 수원성곽(화성)을 쌓을 때에는 두 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의하면 틀의 크기는 세로 15척, 높이 10척이고 간목의 길이가 35척으로,
여덟 사람이 둘로 나뉘어 얼레를 좌우에서 돌려 물건을 올리고,
적당한 높이에 올라가면 줄 갈고리로 끌어서 원하는 자리에 옮긴 다음
다시 얼레를 늦추어 물건을 내리도록한다고 하였다.
녹로(轆轤)는 간주(竿柱)를 높이 세우고 그 꼭대기에 활차를 달고 동아줄을 걸어 밑에서 한쪽 줄을 잡아당겨
물건을 높이 올리는 것은 오래전부터 깃발을 세우는 일 등에 쓰이던 것인데,
조선 후기에 와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데 그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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