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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마애여래의상(法住寺 磨崖如來倚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0. 12. 7. 06:03
법주사 마애여래의상(法住寺 磨崖如來倚像)
법주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고, 그 뒤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가 새롭게 고쳐 지었으며
그 뒤로 진표의 제자들에 의하여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법주사 경내에 있는 마애여래의상은 높이가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옆 바위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이다.
불상의 머리는 바위에 새긴 것들에서는 보기 드물게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하게 새겼다.둥글고 온화한 얼굴에는 크고 긴 코와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과 함께 두꺼운 입술이 잘 표현되어 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여기에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이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반듯하면서 넓은데 비해 유난히 잘록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면을 보여준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친 형태로 가슴에서 다리 사이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들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와 맞대었다.
왼손은 앞에서 수평으로 들어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이 불상은 화사한 연꽃 위에 걸터 앉고 큼직한 연꽃잎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자세를 취하고 있다.불상의 오른쪽 바위 면에는 짐 실은 말을 끄는 사람과 말 앞에 꿇어 앉은 소를 새겨 놓았다.
이것은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 오는 모습과 소가 불법을 구하는 전설을 그렸다고 하는
법주사 창건 설화와 관계되는 암각화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마애불이자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높이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양각된 이 여래좌상(如來坐像)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椅像)으로옆 바위에 조각된 지장보살(地藏菩薩)과 함께 법주사(法住寺)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彌勒佛像)이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은 길다란 귀,삼도(三道)의 표현 등과 함께 고려(高麗) 초기(初期) 마애불(磨崖佛)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쑥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거의 수평적(水平的)으로 처리한 조각수법(彫刻手法)에서도 나타난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가슴에서 양다리 사이로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부드럽게 처리하였으나 도식화(圖式化)된 경향이 엿보인다.
이 불상(佛像)의 오른쪽에 음각(陰刻)된 마애조각은 선사시대(先史時代) 암각(岩刻)이라는일설(一說)도 있지만 의신조사(義信祖師)가 불경(佛經)을 실어오는 모습과
소가 불법(佛法)을 구하였다는 내용의 법주사의 창건 설화와 관계되는 암각화로 추정되고 있다.
하여튼 이 불상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마애불이자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 주는
주존(主尊) 미륵불(彌勒佛)로 중생(衆生)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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