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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해 주는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4. 6. 06:43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해 주는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17  부석사 입구에 위치한  당간지주(幢竿支柱)는

    1m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는데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기둥머리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는 한 돌로 된 정사각형의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주변에는 연꽃을 장식하고, 윗면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치고 있다.


    대체로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또한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당간지주(浮石寺 幢竿支柱)는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로서

    그 주변지역이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금동·나무로도 만든다.

    2개의 기둥을 60~100㎝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마주보는 안쪽 면에 간(杆)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杆溝)나 간공(杆孔)을 두고

    아래에는 간대(竿臺)나 기단부를 설치했다.

    간구는 반드시 안쪽 상단에 있으며 그 아래의 간공은 구멍수가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시원(始源) 형식은 시대에 따른 변화가 없으며,

    각면에 장식된 문양과 지주의 치석수법(治石手法)만이 시대적 특징을 보일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기단부가 거의 파손되어 있는 상태이며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는 부석사당간지주(浮石寺幢竿支柱:보물 제255호),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보물 제59호),

    금산사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보물 제28호),

    827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보물 제4호)가 있으며

    전반적으로 세련된 면을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세로선 무늬가 새겨지고 주두(柱頭)는 원호(圓弧)를 이루었으며 간대와 기단부가 갖추어졌다.

    그러나 문양이 장식화되고 간략화되어 정교하지 못하고 치석도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준다.

    보원사지당간지주(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천흥사지당간지주(天興寺址幢竿支柱:보물 제99호),

    춘천근화동당간지주(春川槿花洞幢竿支柱:보물 제76호),

    홍천희망리당간지주(洪川希望里幢竿支柱:보물 제80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거대한 규모의 당간지주는 조성되지 않았고,

    작고 낮은 목조 당간이 세워졌는데 그나마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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