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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 이간 사당(巍巖 李柬 祠堂)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4. 14. 20:54
외암 이간 사당(巍巖 李柬 祠堂)
이간(李柬, 1677~1727)선생의 자(字)는 공거(公擧,)
호(號)는 외암(巍巖) 또는 추월헌(秋月軒),
본관(本貫)은 예안(禮安)으로 입향조(入鄕組) 사종(嗣宗)의 6세손이다.
선생은 숙종조(肅宗祖,1716) 세자시강원 자의(世子侍講院 咨議),
영조 즉위 1년 동안에는 회덕현감, 경연관(經筵官)을 잠시 지냈다.
정조 때 이조참판 성균관좨주,순조 때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고
불천위(不遷位)에 제수(除授)되었다.
증호는 문정공(文正公)으로 외암서원(巍巖書院)에 신주가 모셔졌다.
선생은 율곡(栗谷)을 태두로 하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이름난 성리학자로
수암(遂菴) 문하의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으뜸이었다.
선생의 독창적인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은 융화적(融和的) 세계관,
이신론적(理神論的) 가치관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보통주의적 철학사상이다.
그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이 조선 후기 최대 학술 논쟁인
호락논변(湖洛論辨)의 실마리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낙론계(洛論系)의 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은 후속되는 인물균론(人物均論),
인물막변론(人物莫辨論)으로 발전하여 북학파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조선 후기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에 통치 이념으로 변화되어
소인교화론, 탕평론, 서얼소통론 등 혁파 논리의 기조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5, 외암민속마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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