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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외암민속마을(巍巖民俗村)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4. 16. 04:49

    아름다운 외암민속마을(巍巖民俗村)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84번지에 위치한 아산외암마을은

    약 500년전에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정이 이주해 오면서 예안 이씨가 대대로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정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점차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정의 6대손인 이간(李柬)이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은 후

    마을 이름도 ‘외암(巍巖)’이라 불렀다고 한다.

    충청도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마을로 마을입구의 돌다리를 건너면서

    좌측에 물레방아가 있고, 개천 반석에 적혀있는 글씨로 외암민속마을의 입지를 알 수 있다.

    동화수석(東華水石) , 외암동천(巍巖洞天) 은 산천에 둘러싸인 경치가 좋은 곳,

    동쪽의 으뜸이라는 도교 신선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마을 전체가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는데,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뭇가지와 같이 큰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작은 가지가 뻗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어 있는 것과 같은 자연형태와 같은 마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듯한 마을이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

    즉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주산이라 하는데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긴 선이 이어지는 축선에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집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동북쪽의 설화산 자락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완만하게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따라서 서쪽의 마을 어귀는 낮고 동쪽의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상이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맞추어 집이 앉은 방향은 거의 서남향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영암댁·참판댁·송화댁 등의 양반주택과 50여 가구의 초가 등

    크고 작은 옛집들이 상당부분 원래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양반집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 특색있는 정원이 당시 양반의 생활모습과 풍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초가 역시 예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과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한 마을에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중류·서민가옥이 함께 남아있어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다.

    아산외암마을은 200117일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외암민속마을

     

    옛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삶의 터전을 정하지 않았다. 바람과 물, 주변 환경과 지리, 나아가 인심까지 두루 살폈다.

    흔히 얘기하는 풍수는 바로 이런 것들을 살펴보고 살아갈 집터를 결정하는 것이다.

    외암민속마을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삶터를 정해 수백 년을 살아왔는지 읽을 수가 있다.

    외암민속마을에 들어가 보면 생동감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축은 주변 환경이나 경관 속에 사람이 어우러져 살고 있을 때 생동감을 지니게 되며 가치가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외암민속마을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반석은 외암마을의 입구에 있는 바위이다.

    반석이 개천 바닥에 깔려있고 마을쪽으로 '외암동천(巍巖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을 새겨두었다.

    동화수석 석각은 높이 50cm, 너비 2m의 크기인데, 두께 50cm정도 되는 자연석에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큰 글씨로 새겼으며,

    그 우측에 기미(己未), 그리고 그 좌측에 이백선서(李伯善書)라고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외암동천 석각은 높이 52cm, 너비 175cm의 크기인데, 두께 50cm정도 되는 자연석에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새겼다.

    끝에는 세로로 이용찬서(李用瓚書)라고 작은 글씨로 새겨 있다.

    글을 새긴 이용찬은 예안이씨 20세손으로 외암 이간의 직계 후손이며,

    건재 이욱렬의 셋째 아들로 이승만정권 때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외암민속마을 입구에는 정려 건물 1동이 있는데 안에는 명정 현판과 정려기가 있고,

    명정 현판에는 '열녀안동권씨정려(烈女安東權氏旌閭)'라 새겨져 있다.

    안동권씨 부인의 삶은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문교부와 문공부에 특별히 천거하여 표창장과 함께 거액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정려기는 안동권씨의 조카인 이득선씨의 부탁으로 1978년에 전원식씨가 글을 짓고 최병무씨가 글씨를 썼다.

    (자료참조 : 외암마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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