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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첨망대"(觀音浦 李忠武公 戰歿遺墟 "瞻望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2. 5. 24. 22:45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첨망대"
(觀音浦 李忠武公 戰歿遺墟 "瞻望臺")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에 위치한 첨망대(瞻望臺)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순국하신 옛 자리를 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첨망대이다.
장군은 선조 31년(1598년) 이 앞바다에서 벌어진 임진왜란(壬辰倭亂) 마지막 전쟁인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대승리로 이끌고 도망하는 왜군을 추격하다 적의 유탄을 맞고
“지금 전쟁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장렬히 순국 하시었다.
이 첨망대(瞻望臺)는 2층 팔작지붕으로 건평 55.8㎡ 이며, 1991년 2월 16일 건립하였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첨망대
노량(露梁) 앞바다는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순천 왜교성에 고립된
소서행장(小西行長,こにし ゆきなが, 고시니 유키나가)을 구츨하기 위해서 출동한
왜장 도진의홍(島津義弘,しまづよしひろ, 시마즈 요시히로) 등의 500여척과
이순신 제독이 주도하는 조(朝). 명(明) 수군 150여척이 처절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이순신 함대의 공격으로 죽음의 경각에 놓인 도진의홍(島津義弘)은 먹다른 골목인 줄도 모르고 관음포로 도망갔으며,
이순신 함대의 맹추격으로 크게 패하여 겨우 50여척만이 빠져나와 여수 해협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
이 전투가 끝날 무렵 이순신 제독은 왜군의 조총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지금 전쟁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라는 유언을 남기며 전사하였다.
이 곳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을 조선의 승리로 이끈 마지막 해전지요,
이충무공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애국충정이 깃든 곳이다.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閑麗水道)를 따라 유유히 남해 노량(露梁)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觀音浦)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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