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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시열 선생이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가르치던 곳 "암서재(巖棲齋)"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2. 6. 2. 21:57

     송시열 선생이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가르치던 곳  "암서재(巖棲齋)"

     

     조선 후기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선생이 정치를 그만 두고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제자 권상하가 쓴 「암서재기」의 기록에 따르면 현종 9년(1668)에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 말기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도 보수하였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86년 다시 수리한 건물이다.

    2칸을 방으로 1칸을 마루로 꾸몄으며 현판 5점이 걸려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만들었다.

    암서재는 화양동계곡 국립공원의 숲과 절벽, 맑은 물을 끼고 자연과 어우러져 더할 수 없는 경치를 보여 주고 있는 곳이다.

    암서재는 1994년 1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가

    1999. 12. 29 사적 제417호 '괴산 우암송시열유적'에 편입되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409


     

     

     

     

     

     


    암서재(巖棲齋)


    암서재는 1666년(현종 7) 우암이 화양동에 들어와 '화양계당'이라는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3년 후인 1669년경 주자의 '운곡정사(雲谷精舍)'를 본따 3칸 정사로 지었다고 한다.

    이후 퇴락된 정사를 청주목사 김진옥(金鎭玉)이 1715년(숙종 41) 중건하고,

    1747년(영조 24)과 1879년(고종 16), 1900년(고종 37)에 거듭 중수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0년에 보수한 것인데, 보수하기 전에는 암서재 앞에 협문과 낮은 담장이 있었다.

    보수를 하면서 담장 대신에 철책을 둘렀다.

    암서재는 1994. 1. 7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 12. 29 시적 제417호에 편입되었다.



    금사담(金沙潭)과 암서재(巖棲齋)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溪谷)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이라 불리우며 화양구곡(華陽九曲) 중에서 중심이되는 곳이다. 

    조선 숙종(1661~1720)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계(政界)를 은퇴(隱退)한 후 이곳 반석 위에 집을 지어 이름을 암서재(巖棲齋)라 하고

    이곳에서 은거(隱居)하며 학문(學問)을 연구(硏究)하고 수양(修養)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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