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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둑에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설화(埋兒說話) "상주 공갈못"
    국내 나들이/호수,저수지(湖水,貯水池) 2012. 7. 31. 22:34

     못 둑에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설화(埋兒說話)

    "상주 공갈못"

     

    공갈못(경북 상주)은 의림지(충북 제천) 벽골제(전북 김제) 등과 같은 시대인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로

    역대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길이 없고,

    다만 고려 명종 때 최정분이란 분이 고쳐 쌓았는데

    못 둑의 길이가 880 보이고, 못 주위의 길이가 16,647척이라 상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못에 물이 차면 수심이 다섯 길이나 되었고,

    서쪽 못 가로는 연꽃이 만발하는데 그 절경을 중국의 전당호에 비길 정도라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의 얼음 어는 것을 보고 흉년, 풍년을 예측하였다고 한다.

    또 정월 열나흗날 밤, 소들이 땀을 흘리는데

    그것은 밤을 이용하여 소들이 못에 얼음을 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경주 용담의 암용이 공갈못 숫용에게 시집온 이야기도 있다.

    또 볶은 콩 세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못 가를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는 말도 있다.


    속설에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다.

    함창읍지에는 이 못의 서반에는 몇리에 걸쳐 연꽃이 피어 있으며

    마치 중국의 전당호를 방불케 하는 풍취를 지녔다고 하여

    그 아름다움과 연꽃의 풍광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옛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옥같은 글을 남기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연상케 하여 준다.

    이 못의 이름이 공갈못이라 부르게 된 것은 못 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설화(埋兒說話)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향민들은 이 못을 신비롭고 여험스러운 영지로 신앙하여 왔다.


    이제는 이와 같은 전설과 연밥 따는 노래가 공갈못을 상기시켜 줄 뿐

    못은 논으로 변하여 그 모습과 풍광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옛 못을 알려주는 비석이 옛 못 뚝에 입구에 외롭게 서서 찾아주는 이를 반기고 있다.

     

     

    공갈못 옛터 표석

     

     

     

     

    상주 공검지 습지보호지역

     

    상주 공검지는 약 1400년 전 후삼국시대에 벼농사를 위해 조성된 저수지로써 논습지로서의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며,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잿빛개구리매(천연기념물 323-6호), 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323-2호) 등이 관찰되고,

    식물 79종, 포유류 11종, 조류 63종, 양서류 8종, 파충류 3종이 서식하는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으로

    2011년 6월 29일 환경부에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공갈못은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축조(築造)한 못(池)으로 고려사(高麗史)에는 명종(明宗) 25년(1195년)에

    최정분(崔正汾)이 수축(修築)하였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못 둑이 880步 못 둘레가 22里로 기록되어 있다.

    호반(湖畔)의 크기나 아름답기로도 내력(來歷)이 깊은 못이다.

    공갈이란 아이를 넣고 둑을 쌓았다는 매아설화(埋兒說話)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공갈못은 쌍용연투(雙龍戀鬪)의 전설(傳說)이 있고,

    용갈이로 풍흉년(豊凶年)을 점치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은 영지(靈池)로 알려졌다.

    1958년 함성토지개량조합(咸成土地改良組合)에서 오태저수지(五台貯水池)를 신설하자 못의 기능을 잃게 되어

    1962년 농토로 바꾸어서 식량증산(食糧增産)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못은 없어졌으나 우리나라 모심기 노래의 백미(白眉)인 연밥 따는 노래의

    애잔하고 구성진 가락은 오늘에 이어져서 애환(哀歡)을 달래주고 있다.

     

     

     

     

    공갈못 노래비


    <연밥 따는 노래>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 처자야

    연줄 줄밥 내 따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오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년 언약 맺어다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간다




    이 노래는 ‘영남의 제일 가는 못’인 상주시 공검면 공갈못(공검지)가에 세워놓은 <공갈못 노래비>의 내용이다.


    공갈못 하면 곧 우리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것은 연밥 따는 노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심을 때 부르는 “공갈못 노래”는 일명 ‘채련요(採蓮謠)’라고도 하며 경상북도 지방의 대표적 민요이다.

     

    이 노래는 공갈못을 배경으로 하여 발생 형성된 민간의 노래로 지방성과 토속성을 짙게 띈 민요의 성격으로

    이 노래의 내용은 연정(戀情)·사친(事親)·완월관어(玩月觀魚)·호련(護蓮)등의 유형을 이루었다.


    형식으로는 기본형, 복합형, 생략형, 후렴첨가형 등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노래는 동남 동녀를 대상으로 한 한국민요의 대표할 만한 노래군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군이 상주, 함창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서 전승 보존되는

    이 지방 특유의 무형 문화재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농경문화의 발상지 공검면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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