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만든 시장 "수원 팔달문시장"수원사랑/이모저모 2012. 12. 15. 20:15
왕이 만든 시장 "수원 팔달문시장"
“왕(王)이 만든 시장” 수원 팔달문 시장이 유상(柳商)선포식을 갖고
지역경제의 뿌리인 전통시장에 수원화성을 비롯한 다양한 관광자원과 연계한 아이템으로
관광객을 시장으로 유인하고 전통시장의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유상(柳商)이란 팔달문시장에서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묘를 수원부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천에 버드(柳)나무를 심게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상(柳商)은 이러한 효성을 기본으로 정조의 꿈에 공감해 시장에 모여든 선비 상인들을 말한다.
특히 220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팔달문시장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이 살아 숨쉬는
서민경제의 중심지이며, 지역민심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는 수 차례의 암살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이 그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다.
젊은 임금 정조는 고리타분한 성리학자들의 명분싸움으로는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고 따뜻하게 입힐 수 없다고 판단한다.
서학에 관심을 갖고 부국강병을 모색하던 그는 상업에서 국가 중흥의 열쇠를 발견했다.
수원에 개혁의 씨앗을 뿌리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뜻을 이어 개혁의 씨앗을 뿌릴 도시는 한양이 아니라 수원이어야 하리라,
실사구시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은 감지한 왕은 신분계급으로 정체된 조선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은 상업이라고 판단했다.
수원 팔달문시장이 왕의 마음속에서 태어나는 순간이다.
아버지를 수원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나서 그후 왕은 자주 수원을 찾았다. 그가 지나간 곳마다 길이 생겨났다.
수원의 길, 사통팔달의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길이 생기면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물류가 풍부해진다. 거기서 문화가 생기고 새로운 힘이 형성된다.
정조의 능행차는 한양의 권력자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새로운 거점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었다.
새 도시를 건설하다
정조는 수원을 자체수비가 가능한 성곽도시로 설계한다.
영의정 채제공이 도시를 기안하고 실학자 정약용이 화성을 설계한다.
특히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 덕분에 공사기간으 단축하고 경비를 절감한 것은 물론이며,
인명사고가 나지 않아 정조는 크게 기뻐했다.
버드나무를 심다
본래 수원은 이름과 달리 물이 부족했다. 그런데 화성을 축성한 다음 정조는 수원천변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러자 제방이 튼튼해지고 경관이 아름다워졌다. 수원을 유경(柳京)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수원의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조는 물길을 내고 저수지를 파 국영농장을 만든 후 버드나무를 심는다.
버드나무는 제방을 탄탄하게 잡아주고 물을 지켜준다, 지금의 수원천 버드나무가 유명해 수원천을 "버드내"라고까지 불렀다.
또한 버드나무가 많다고 하여 수원을 "유경(柳京)"이라고도 불렀다.
팔달문에 시장을 열다
수원을 새로운 세상을 꿈꾼 젊은 임금 정조가 직접 건설한 신도시였다.
중상주의자 정조는 부국강병의 기본이 상업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장사하기를 원하는 수원사람들에게 6만 냥의 장사밑천을 대 주어 시장을 열었다.
이것이 팔달문시장이다. 팔달문 시장은 "왕이 만든 시장"이자 수원경제의 뿌리였다.
버드나무를 심은 뜻은 꾀고리를 청함이니
정조는 윤선도 가문더러 수원에 올라와 장사를 해 달라는 어찰을 보낸다.
이미 해남에서 중개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해남 윤씨 가문은 고민하지만
남인의 거두 집안답게 정조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수원 유상(柳商)의 탄생
수원은 유경이다! 나 또한 유경의 상인이 되리라,
정조의 숨은 뜻을 간파한 선비들, 전국의 눈 밝은 상인들이 하나 둘씩 팔달문으로 모여들었다.
윤선도 가문을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상인들이 팔달문 시장으로 몰려 온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선비들이었다. 정조와 뜻을 같이하는 실학자들도 많았다. 수원 유상의 탄생이다.
물산이 풍부해지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사통팔달 팔달문에 어찌 인재가 없으리 정조는 팔달문 상이들에게 인삼과 갓의 유통권을 주었다.
그리하여 수원 팔달문은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과 한양 상인들이 모두 모이는 상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한다.
문화를 꽃피우다
정조는 수원이 경제력과 문화를 모두 갖춘 완벽한 도시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3년에 한 번 씩 있는 식년시를 수원에서는 매년 열게 했다. 그러자 수많은 선비들이 수원으로 몰려왔다.
그로 인해 수원에는 문화와 예술의 꽃이 활짝 피었다. 버드나무의 특성은 부드러움, 부드러움은 여성적인 것이다.
오행으로 따져 물에 해당되는데, 물은 문화를 상징한다. 즉, 수원 유상은 문화를 아는 상인, 풍류를 즐기는 상인이다.
풍류를 즐기는 상인이란 장사를 하되 이익에 목매지 않고, 상업을 천직으로 알고 즐길 줄 아는 상인을 이른다.
220년 간 상권을 지켜오다
상업의 길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요.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믿었던 사람들.
정조대왕의 부름에 천릿길을 달려와 수원에 터를 잡은 사람들.
그리하여 유경 수원에서 정조가 기대한 상도를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사람들.
220년간 여러 세대에 거치며 일제강점기와 육이오(6,25)의 비극을 이겨내고 상권을 지켜온 팔달문시장 상인들.
우리는 유상이다.
재래시장을 지킬 때 나라경제의 뿌리가 되는 서민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의 믿음과 희망은 유경을 설계했던 왕.
정조의 꿈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바로 유상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수원사랑 >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숙지산(熟知山) (0) 2013.01.07 농촌진흥청(農村振興廳) (0) 2013.01.01 행궁동(매향동) 문화재 지킴이 마을 (0) 2012.12.15 KT&G 수원제조창부지 (개발 예상도) (0) 2012.12.12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京畿道醫療院 水原病院) (0) 201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