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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달재노래비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3. 10. 11. 06:48

     

    박달재 노래비

     

     

    울고넘는 박달재

     

    (작사 반야월 / 작곡 김교성 /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집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왕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면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부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박달재 목각공원 입구에서~)

     

     

     

     

     

    박달재

     

    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으나,

    조선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곳의 어여쁜 낭자 금봉의

    애닮은 사랑의 전설이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불리우게 되었다.

    장원의 부푼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박달은 고개아래 촌가에 하룻밤 유하려다

    길손을 맞이하는 금봉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금봉도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한 모습에

    잠을 못이루고 달밤을 거닐다가 역시 금봉을 그리면서 서성이던 박달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몇날을 머물며 금봉과 사랑을 속삭이던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에 혼인을 하기로 언약하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고 그날부터 금봉은 박달의 장원급제를 서낭신께 빌었으나

    과거가 끝나고도 박달의 소식이 없자 크게 상심하여 고개를 오르내리며

    박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한을 품고 삶을 거두고 말았다.

    한양에 온 박달도 과거준비는 잊은 채 금봉을 그리는 시만 읊다가 낙방을 한 후

    금봉을 보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금봉의 장례 사흘 후 되돌아와 금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다가 언 듯 고개를 오르는 금봉의 환상을 보고 뒤쫓아 가서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금봉의 모습은 사라지고 박달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이등령을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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