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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동상(正祖大王 銅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4. 8. 12. 23:30
정조대왕 동상(正祖大王 銅像)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화성행궁 뒷편 팔달산 자락에 조성된 정조대왕(正祖大王) 조형물은
조각가 김인겸 선생이 2002년 3월부터 1년여동안 건축한 정조대왕 기념 조형물이다.
1천680㎡의 부지에 동상(높이 6m, 너비 3m), 시공의 탑(높이 11m, 너비 4.6m),
역사의 벽(높이 4.8m, 너비 17.9m)으로 구성돼 있다.
조형물은 화성(華城)의 이미지를 현대조형 어법으로 함축한 상징성과,공간의 음과 양이 입체적으로 소통되는 다기능 복합공간을 창출한 독창적 작품으로
그 중심부에 정조대왕 동상이 위치해 있으며,
동상 뒤편 "역사의 벽"에는 원행도 등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정조대왕(正祖大王)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요절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 뒤에 眞宗이 됨)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에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해 영조가 죽자 2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생부인 장헌세자(莊獻世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또한 세손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
홍국영(洪國榮) 등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이겨냈다.
정조의 업적은 규장각을 통한 문화사업이 대종을 이루지만, 이 밖에도 일성록(日省錄)의 편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편찬, 장용영(壯勇營)의 설치, 형정(刑政)의 개혁, 궁차징세법(宮差徵稅法)의 폐지,
자휼전칙(字恤典則)의 반포, 서류소통절목(庶類疏通節目)의 공포, 노비추쇄법(奴婢推刷法)의 폐지,
천세력(千歲曆)의 제정 및 보급, 통공정책(通共政策)의 실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정조는 비명에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예우문제에도 고심하였다.
외조부 홍봉한(洪鳳漢)이 노론(老論) 세도가로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었지만,
홀로 된 어머니를 생각해 사면해야 하는 갈등을 겪었다.
또 아버지를 장헌세자로 추존하였다.(고종 때 장조로 추존됨)
또한 양주 배봉산(拜峰山) 아래에 있던 장헌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花山) 아래로 이장해 현륭원(顯隆園)이라 했다가
다시 융릉(隆陵)으로 올렸고, 용주사(龍珠寺)를 세워 원찰(願刹)로 삼았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복권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도를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완수하였다.
그는 조선시대 27명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문집을 남겼다.
180권 100책 10갑에 달하는 그의 문집이 홍재전서(弘齋全書)로 간행된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가 있었기에 스스로 임금이자 스승인 군사(君師)로 자부하고 신하들을 영도할 수 있었다.
학문을 숭상하는 시대에 탁월한 학문적 능력으로 군사의 위상을 확보하여 문화국가를 통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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