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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江華島) 갑곶돈대(甲串墩臺)- 사적 제306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1. 20. 04:17

     

     

    강화도(江華島) 갑곶돈대(甲串墩臺)- 사적 제306호

     

     

     

     

     

     

    갑곶돈대는 초지진, 광성보 처럼 요새라는 명칭을 받지 못하고 단지 '돈대(墩臺)'라는 명칭으로 남아있다.

     

     

    돈대라는 것은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

     

     

    옹벽(擁壁)으로 받친 부분을 말하는데, 본디 분수·연못·화목(花木) 등이 조성되는 정원시설로서의 것과

     

     

    성곽이나 변방의 요지에 구축하여 총구를 설치하고 봉수시설을 갖춘 방위시설로서의 것이 있다.

     

     

    위에 소개한 광성보에는 손돌목 돈대와 용두돈대가 있어 광성보를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갑곶돈대 또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강화도에서 육지와 가까운 돌출형 구릉에 위치하여

     

     

    강화도를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갑곶돈대는 고려가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에 옮

     

     

    몽골과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조선 인조 22년(1644) 강화의 여러 진이 설치될 때,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돈대로 상륙하여 강화성, 문수산성 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같은 해 10월 13일 프랑스군은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주하였다.

     

     

    양헌수 장군은 강화도 남쪽 해협을 지킨 어재연 장군과 함께 강화도를 지킨 명장으로 남아 있다.

     

     

    어재연 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순국을 하였지만

     

     

    양헌수 장군은 프랑스 군을 물리치고 병마사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한다.

     

     

    우리 선조의 생명으로 지킨 이 곳은 지금은 공원처럼 시설이 꾸며있어 산책을 겸할 수 있다.

     

     

    사적 제306호인 갑곶돈대는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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