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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성 감곡성당(陰城 甘谷聖堂)-매괴 성모순례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5. 6. 4. 05:30

    음성 감곡성당(陰城 甘谷聖堂) - 매괴 성모 순례지

     

    음성 감곡성당은 충청북도에서 처음으로 지은 성당으로 1896년 프랑스 신부 임가밀로가 세웠다.

    원래 이곳은 명성황후의 6촌 오빠 민응식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되면서 의병들이 사용하게 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설계는 프랑스 신부 시잘레가 하였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는데 명동성당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안쪽 천장은 원형 돔으로 꾸몄다.

    1903년에 한옥과 서양식을 절충한 사제관과 구 성당(아랫 성당)을 신축하게 되었으며,

    ‘매괴의 성모’를 주보로 삼고 뮈텔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30년 10월 7일에 고딕식으로 지었으며,

    1934년에 석조 건물로 2층의 사제관(현 매괴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1907년 매괴 학당을 설립해 문맹퇴치에 힘쓰고 우리말을 가르쳐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도 민족의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공헌하였다.

    역사의 고난과 함께 뜻깊은 민족정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914년에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상체 거동 행사를 시작하였다.

    음성 감곡성당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왕장리)

     

     

     

     

    매괴 성모 순례지 표석

     

     

     

     

     

     

     

     

     

     

     

     

     

     

     

     

     

     

     

     

     

    탁덕임가밀로(Camille Bouillon, 任加彌)신부 흉상

     

     

     

     

     

     

     

     

     

     

     

     

     

     

     

     

     

    양업관

     

     

     

     

     

     

     

     

     

     

     

     

     

     

     

    매괴 박물관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함

     

     

     

     

     

     

     

     

     

    가밀로 영성의 집

     

     

     

     

     

     

     

     

     

     

     

    매괴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I loved you before I met you

     

     

     

     

     

     

     

     

     

     

     

     

     

     

     

     

     

     

     

     

     

    매괴의 성모 순례지의 성모 광장

     

    이 성모 광장은 1943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당시 본당 설립자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신부의 동의도 없이 강압적으로 성당보다 높은 위치인

    이곳에 일본 천황에 대한 심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신사터를 닦으려 했던 곳이다.

    임가밀로 신부가 이 광장을 되찾게 해달라고 성모님께 기도하며

    무염시대 성모님의 기적의 패를 몰래 공사장에 갖다 묻었다.

    그 후 어느 여름날 저녁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폭우가 내려 공사장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또한, 큰 벼락과 함께 매산의 산허리가 무너져 내려앉게 되어

    일본인들이 다시 복구공사를 진행하나 이런 일들이 계속 되풀이되어

    공사는 결국 2년 만에 중단되고 8.15 해방을 맞아

    일본인들의 신사 건립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주변 일대의 외교인들까지도

    임 가밀로 신부의 간절한 기도를 성모님께서 들어주시어 하느님의 기적이

    베풀어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은 1955년 8월 15일 몽소 승천 대축일에 성모님 상을 모시고

    임 가밀로 신부의 뜻을 받들어 매괴 성모 광장이 되었다.

    이곳은 매년 지방에서는 한국 최초의 성체 현양대회가 열리고

    본당의 성모의 밤 행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성모 광장을 중심으로 1986년에는 성당에서 성모 광장에 이르는

    200여 m 길에 묵주기도 15 현의가 설치되었고,

    1996년에는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이해 성모 광장 끝 편에서 시작하여

    300여 m 매산 정상까지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하여

    순례지를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골고타 언덕을 회상하며 매괴 동산의 주인이신 성모님께 찬미와 현양의 장소로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을 묵상하게 하는 기도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감곡 매괴성당(甘谷玫瑰聖堂)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감곡성당은 본래 여주군 강천면 부흥골 본당 관할이었다.

    1894년 소신학교가 자리 잡은 그곳에서 본당 신부로 부임한

    부이용(Camille Bouillon, 任加彌, 임가미) 신부가 본당 위치로 적당치 않음을 알고

    이전 장소를 물색하던 중 1896년 5월 감곡의 매산(玫山) 언덕 밑의 터를 매입,

    그해 9월 17일 현 감곡(옛 장호원)으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최초의 성당(현 매괴고등학교)은 임오군란 때 명성항후가 임시 피신해 있던

    민응식(閔應植)의 집으로써, 일본군의 방화로 잿더미가 된 골재만 남은 집터를

    구입하여 수리, 사용하다 사제관 겸 소성당을 완공하였다.

    교우가 증가하자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사제관과 구 성당(아랫 성당)을 세웠다.

    성모님께 약속한 대로 “매괴의 성모”를 주보로 삼고 뮈텔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관할 공소로는 경기도의 여주, 안성, 이천 일부,

    충청도의 단양, 제천, 충주, 음성, 괴산, 진천, 보은, 청주 등지였다.

    1930년 10월 7일에는 현재 성당(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지정)을 신축과 함께

    3층의 박물관(옛 사제관)과 학교 교사를 신축했고,

    지방민 교육을 위해 1907년 매괴 학당(玫瑰學堂)을 설립하였다.

    또한 매산(玫山)을 잘 닦아 1914년 지방에서는 처음 거행된 성체 거동 행사를 시작하였다.

    지금 이곳은 성모 순례지로써 개발하고 있으며, 가밀로 영성 회관에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일일 피정, 박물관 관람, 묵주의 기도 15 현의와 산상 십자가의 길을 할 수가 있으며,

    하루를 성모님의 품 안에서 지내고 가실 수가 있는 곳입니다.

    초대 본당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 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다음 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자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 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 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 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 대로 감곡 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성당이 된 것이다.

     

     

    "매괴(玫瑰)"의 뜻

    "가톨릭의 묵주기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구슬을 꿰어 세면서 기도 횟수를 센 전통방식으로,

    그리고 수도원에서 주님의 기도나 시편 성구들을 구슬을 꿰어 센 전통에서 발전하였고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께서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 성 도미니코를 위해

    묵주를 내려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가톨릭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기도이다.

    묵주기도를 할 때에는 주님의 기도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가톨릭교회의 기도문인

    성모송(聖母頌: Ave Maria)을 바치면서 묵주 알을 돌리면서 횟수를 세게 되는데,

    가톨릭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할 때에는 성모송 한 번을 바칠 때마다

    성모 마리아 님을 위해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치면 성모송을 10번 바치게 되므로

    상징적으로 10송이로 된 장미 한 다발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것이 결코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든가 하는 행위는 아니다.

    묵주기도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따님이자 예수님의 어머니,

    성령의 선택된 짝인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그래서 묵주기도의 원어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 하는데

    '로사리오'란 '장미 꽃다발'이라는 뜻이다.

    이 로사리오를 중국에서 번역한 중국식 한자어가 '매괴'이다.

    매괴란 원래 해당화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시대에 천주교를 들여올 때에

    매괴라는 용어도 그대로 들여왔고,

    그래서 묵주를 '매괴', 묵주기도를 '매괴경'이라고 불렀다.

    '로사리오의 여왕' 또는 '묵주기도의 모후'라는 말로 번역되는 칭호는

    성모 마리아의 여러 가지 호칭 중 하나인데,

    1884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포르투나 아그렐리라는 소녀가 부른 이 호칭을

    성모님이 맘에 들어하셔서 그 소녀에게 발현하여

    '묵주의 9일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 발현"은

    1917년부터 여러 차례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3만 명의 군중이 목격하고 3명의 어린이들이 예언을 전해 들은 사건이다.

    성모님은 세계대전과 공산주의의 등장, 교회의 위기를 경고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때 성모님께서 스스로를 칭한 말씀이

    역시 '나는 묵주기도의 모후(로사리오의 여왕)이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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