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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라자로마을의 삐에따(Pieta) 상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5. 7. 10. 23:00
성라자로마을의 삐에따(Pieta) 상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에 가면 성당 오른편에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이 있다.
이 조각품은 '삐에따(Pieta)' 란 이름이 붙여진 대작으로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아들 예수를
오른팔로는 머리를 안고 왼팔로는 다리를 감고 그 몸체를 무릎위에 놓고 처절하게 죽은 아들의 얼굴을
슬픈 얼굴로 내려다보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삐에따(Pieta)란 이 조각의 이름은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효성스런 행동, 즉 효도(孝道)란 뜻이 있다.
또한 영어의 경건 (敬虔/Piety)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고 더 나아가서 믿음이란 말도 이 "삐에따"(Pietas) 란 말에 포함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왜 이 죽은 아들이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모습에 孝道라든가 믿음을 의미하는 삐에따 (Pieta)란 이름을 붙혔는지
그 작가의 본래 의도는 명확히 모르지만만 효도(孝道), 효성(孝誠) 이것이 경건(敬虔)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한 개념이라는데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혹은 경건(敬虔)이란 것은 바로 자식과 어머니의 이 거룩한 관계와 상통한다는 사실이다.
=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성라자로마을에서 =
미켈란젤로의 명작 삐에따(Pieta)상에 얽힌 이야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 ~ 1564가 어느날 대리석 채석상점 앞을 지나다
거대한 대리석을 보고 채석상점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채석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이 대리석은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지난 10년간 그것을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을 공짜로 얻어 자기 작업실로 운반했다.
그로 부터 1년후,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 상점 주인을 자기 작업실로 초대했다.
"와서 보시오. 그때 그 대리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의 작품을 본 상점 주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안고 있는 상으로,
죽은 예수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가게 주인이 물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조각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치려 하는데 예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지금 이 대리석 안에 누워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떼어내 내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게 해다오.'
대리석 안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예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상이 숨어있었기 때문에 그 대리석이 그토록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예수님이 시키시는대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이라오."
그후 그 조각상은 바티칸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십 수년 전에 한 미치광이가
망치로 예수와 마리아의 머리 부분을 깨뜨려, 그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경찰이 그를 체포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법정에서 그 미치광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켈란젤로가 아니기 때문에 그처럼 위대한 조각 작품을 탄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파괴할 수는 있었습니다.
미켈란제로는 그 작품을 조각해서 이름을 남겼지만
나는 그 유명한 조각을 파괴해서라도 이름을 남기고 싶었지요.
내 자신이 신문 전면에 실리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나는 성공했으니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나환자들의 힘겨운 고통을 믿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이 삐에따 상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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