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해우재 화장실문화공원(解憂齋 化粧室 文化公園)
    수원사랑/깨끗한 화장실(化粧室) 2015. 7. 17. 05:30

     

    해우재 화장실 문화공원(解憂齋 化粧室 文化公園)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세계 최초로 알려져 있는 변기 모양의 주택

     

     

    “해우재(解憂齋:화장실 문화 전시관)”에 이어 화장실을 주제로 꾸민 공원(화장실 문화공원)을 조성했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재(解憂齋)”는 민선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별칭으로 “미스터 토일렛(Mr.Toilet)”으로 불리던 故 심재덕(沈載德,1939~2009) 선생께서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화장실 문화공원은 해우재(解憂齋)옆 5,190㎡ 대지에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모형이 두루 배치됐다.

     

     

    우리 민족이 이미 오래전에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신라시대 귀족 여인들이 사용했던 “노둣돌”,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인 백제시대 “왕궁리 화장실”, 제주도에서 인분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돼지를 사육하던 “통시변소”,

     

     

    조선시대의 이동식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도 있다.

     

    요강이 장식물처럼 곳곳에 자리 잡았고, 짚으로 엮은 뒷간을 지역별 특색을 살려 재현했다.

    고대 로마부터 현대까지 서양의 변기 변천사를 보여주는 모형도 설치했다.

    특히 용변을 보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형물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른과 아이 4명이 아랫도리를 내리고 나란히 앉아 힘을 쓰며 용변을 보는 조각도 있다.

    그리고 오줌싸개가 키를 쓰고 바가지에 소금을 꿔오는 추억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458번길 9 (이목동) =

     

     

     

     

     

    똥통문

     

    똥은 그 빛깔 때문에 재물을 상장하기도 하는데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똥 꿈을 꾸라고도 하고,

    또한 "똥통문"을 통과하여 지나면 재물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고 한다.

     

     

     

     

     

     

    변기를 이용한 화분

     

    해우재 종합안내도

     

     

     

     

     

    똥지게 메는 사람

     

    우리 조상들은 똥 보기를 황금같이 하였다.

    농경사회에서 대소변은 골치 아픈 오물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거름이었다.

    이는 "밥 한 사발은 줘도 한 삼태기 똥거름은 안 준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

     

     

    오줌 싼 아이들 조형물

     

    우리 조상들은 오줌 싼 아이에게 키를 씌우고 소금을 얻어오라고 했는데,

    키는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농기구로, 

    키를 머리에 씌우는 것은 자신의 아이를 오줌싸는 쭉정이같은 아이가 아니라

    오줌을 가릴 줄 아는 알곡처럼 올찬 아이로 자라기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진 것이며,

    또한 소금은 본래 부정한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는데

    오줌싸개에게 이러한 부정적 행동을 금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밑씻개

     

    뒤처리 도구를 일컫는 말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휴지가 널리 보급되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볏짚을 사용하였다.

    볏짚이 귀한 지역에서는 변소(화장실)에 새끼줄울 매달아 놓고 다리를 벌려 "쓰윽" 닦고 지나가면서 뒤처리를 하기도 하였다.

     

     

     

     

     

    왕궁리 유적 화장실

     

    1,400년전 우리나라 조상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전라북도 익산의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화장실은 7세기(백제 무왕 600년~614년)경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로 화장실 고고학의 보물창고이다.

    당시 사용하던 숟가락 모양의 나무 주걱과 화장실 터의 토양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섭취했던 음식을 추정할 수 있어 고대인의 식생활과 화장실 문화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지붕없는 뒷간

     

    하인 화장실로 불리는 지붕없는 뒷간은 잡석을 두르고 한쪽을 틔워놓고 지붕과 문이 없음.

     

     

     

     

    통시 변소

     

    제주도의 통시는 배설 공간에 돼지를 기르는 형태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뒤처리에 개, 돼지, 물고기 등을 이용하는 예가 있는데,

    이는 음식물의 영양분이 일부만 인체에 흡수되고 배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통시는 인간의 배설물이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는 친환경 화장실의 좋은 예라고 한다.

     

     

     

    노둣돌

     

    발을 딛도록 놓아 둔 돌을 의미한다.

    경상북도 경주의 유명한 불교유적인 불국사의 노둣골은 신라시대 귀족부인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로 추축된다.

    또한 노둣돌은 말을 타고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기 위해 대문 앞에 놓아 둔 큰 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용 변기

     

    여성용 변기는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아 걸터앉기 편안하고, 밭에 거름으로 붓기에 편리하게 디자인 되었다.

     

     

     

     

    동물모양의 남자용 소변기

     

    호자(虎子)는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재미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백제시대의 독창적인 남성용 변기이다.

     

     

     

    매화틀과 매화그릇

     

    궁중에서 쓰던 휴대용 변기의 아름다운 이름이다.

    임금의 대변을 매화꽃에 비유하였으며, 실제로 어의(임금의 의원)는

    대소변의 빛깔, 냄새, 그리고 맛으로 임금의 건강을 살폈다고 한다.

     

    "매화틀"의 본디 이름은 "매우틀"이라고 하는데,

    매우란 대소변을 말하는 것으로 매(梅)는 큰 것(대변),우(雨)는 작은 것(소변)을 뜻한다고 한다. 

     

     

     

     

    똥장군과 지게

     

    똥장군은 변소(화장실)의 배설물을 담아 나르기 위한 용기이다.

    중앙의 불룩한 생김새로 인해 똥장군이라고 불리었으며, 이 용기를 이동하기 위해 지게를 사용하였다.

     

     

     

    요강

     

    요강은 생활에 꼭 필요했던 물건으로 재질에 따라 놋, 옹기, 사기, 알루미늄, 플라스틱 요강이 있었다.

    용도에 따라서는 신부용 요강, 명기 요강, 어린이용 알요강이 있었다.

    가마 탄 새색시의 오줌소리를 줄이기 위해 요강 안에 목화씨 등을 깔았고,

    명기 요강은 죽은 이가 저승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을 누리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 무덤에 함께 매장하였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놋요강은 요긴한 혼수였다.

     

     

     

     

    308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