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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의 고향, 삼강(三江)마을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5. 9. 12. 06:13

    그리움의 고향, 삼강(三江)마을

     

    경북 예천에는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있다.

    태백에서 발원하는 낙동강, 봉화에서 발원하는 내성천, 문경에서 발원하는 금천. 이 곳을 삼강(三江)이라고 한다.

    삼강마을은 김해에서 소금을 싣고 낙동강을 따라 이곳 삼강나루까지 소금배가 올라와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특히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이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가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추풍령, 죽령, 문경새재가 있었는데

    시험을 보러 갈 때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 죽령을 넘어가면 죽을 쑤고,

    이곳 삼강 나루를 통해 새가 넘다가 떨어진다는 조령(鳥嶺, 문경새재)을 넘어야 장원 급제하여

    금의환향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도 있다.

    그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막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번성했던 주막과 나루터는 1970년대에 들면서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놓이면서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주막도, 나루터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노젓던 뱃사공도 어느 날 떠나면서 수많은 애환들을 묻어둔채 나루는 완전히 제기능을 잃고

    주막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하지만 1900년경에 생긴 삼강주막은 나루터의 쇠락으로 장사도 안되련만은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2005년도까지 운영해 왔다.

    찾아 오는 손님이래야 마을노인네들 몇분 뿐이고 기껏 소주 한두병 파는게 전부였다.

    유옥련 할머니는 이곳 뱃사공과 혼인하여 1930년대부터 이 주막을 맡아 오면서

    남편도 일찍 사별하고  문경에 사는 큰자식이 모시겠다는 것도 뿌리치고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약 70년간 혼자서 주막을 꾸려오며 지켰다.

    아마 이곳에서 한평생 살아온 정때문에 못 떠나지 않았을까.

    이 시대 마지막 주모이면서 낙동강 유역 나루에 산재해 있었던 이시대 마지막 주막이기도 하다.

     

    유옥련할머니가 돌아 가신후 돌볼 주모도 없는 삼강주막은 허물어져 갔다.

    리나라 하나밖에 없는 주막이라며 마을주민들이 주막 살리기에 나서

    경북도에서 지원을 받아 지금의 형태로 복원하여 경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받았다.

     

     

     

     

     

    三江마을

     

    글 정 재 삼

     

    태백산 산골짜기 맑은 물 굽어 돌아

    낙동강 원류 푸른 물 예까지 흘러들고

     

    일월산 산골 내성천

    소백산 산골 금천의 정한 물 合流하여

    낙동강 칠 백 리 시작이랍니다

     

    山 셋이 뻗어 모여 둥지 만들고

    江 셋이 合水하여 精氣로운

    三江 마을 淸風자손 기운 남아돕니다

     

    강 건너 청솔 숲 병풍을 치고

    래 섬 물길 따라 고기 떼 은빛

    풍광이 아름다운 신묘한 마을입니다

     

    수 백년 철따라풀 향기 가득 빚어내고

    살구나무 까치 둥지 산새소리 어울려

    알록달록 꽃피운 역사 깊은 마을입니다.

     

     

     

     

     

     

     

    삼강주막(三江酒幕)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제13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보부상, 사공숙소

     

    원래 이 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보부상 숙소와 사공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이동이 아주 활발하였다.

    언제나 보부상과 길손들이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만큼 분주했다.

    밤이 되면 낯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숙소이며,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을 위해 기꺼이 노를 잡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당시 건물은 1934년(甲戌年) 대홍수로 모두 멸실되었으나,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삼강 나루터 유래

     

    삼강나루터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였기에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던 곳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 척이 오갔었는데 큰 배는 소와 각종물류를 수송하는 수단으로,

    작은 배는 15명의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인근 교량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이 중단되었다.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재현했다.

     

     

     

    삼강절경(三江絶景) 표석(標石)

     

     

    삼강절경(三江絶景)

     

    삼강절경(三江絶景)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인 삼강(三江)이 만나 화합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낙동강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과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고,주위에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삼강팔경(三江八景) 한시(漢詩)는 조선시대 문인인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이 삼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였고,

    삼강절경(三江絶景) 휘호는 서예의 대가인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선생이 직접 쓰셨음.

     

     

    삼강팔경(三江八景)의 시비(詩碑)

     

    청산효무(靑山曉霧) 한폭의 그림같은 청산의 새벽안개

    백석모연(白石暮煙) 무지개 걸린 듯 백식개의 저녁 연기.

    마령춘화(馬嶺春花) 비단에 수놓은 듯한 마령의 봄꽃

    서벽만풍(西壁晩楓) 강물 위에 비친 두무산의 늦은 단풍.

    후제원망(後提?望) 뒷산 언덕에서 멀리 바라보는 산천.

    산동별장(山洞別庄) 속세를 떠난 도원경 같은 산막골 산장

    청사계주(淸沙繫舟) : 맑은 모래 불가에 매어 놓은 배 

    동산망월(東山望月)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

     

     

     

    옛날 과거 선비들이 즐겨찾던 삼강주막 막걸리

    장안사 스님께서 즐겨찾던 삼강주막 곡차

    三江 처녀뱃사공 나룻배 生막걸리

    (주)삼강주막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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