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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류나무(Pomegranate Tree)
    자연과 함께/나무(木) 2015. 9. 20. 22:30

    석류나무(Pomegranate Tree)

     

     석류(石榴) 또는 柘榴

     

    석류나무는 이란이 원산지이며, 중국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란의 옛 이름이 페르시아이고 중국식으로 표기하면 안석국(安石國)이라 하여 흔히 석류를 ‘안석류’라고 한다.

    “격물총화”를 비롯한 옛 문헌에는 한나라 때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장건(張騫)이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후 석류나무는 중국에 널리 퍼졌으며, 아름다운 꽃과 독특한 열매 때문에 수많은 시가(詩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자기의 문양으로도 쓰였으며, 문헌상으로는 “고려사”에서 의종 5년(1151) 6월 초에 처음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는 당초문(唐草紋)이 유행하였으며,

    여기에 석류 문양이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7세기 이전에 수입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류나무 꽃은 꽃받침이 발달하여 꽃통이 긴 작은 종(鐘)모양을 이루며,

    끝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여섯 장의 꽃잎이 진한 붉은빛으로 핀다.

    이런 꽃 모양을 보고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은 “짙푸른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萬綠叢中紅一點)···”이라고 노래했다.

    석류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뭇 남성 속의 한 여인을 말할 때 쓰는 ‘홍일점’의 어원이다.

    석류나무 열매가 익어 가는 과정은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차츰 커져가는 음낭의 크기와 그 모양이 닮아 있다.

    열매의 이런 특징은 다산(多産)의 의미와 함께 음양의 상징성이 있어 옛 여인들의 신변 잡품에 다양하게 쓰였다.

    조선시대 귀부인들의 예복인 당의(唐衣), 왕비의 대례복, 골무, 안방가구 등에 석류문양이 단골 메뉴로 들어갔다.

    또 비녀머리를 석류꽃 모양으로 새긴 석류잠(石榴簪)을 꽂았는가 하면

    귀부인들이 차고 다니던 향낭(香囊)은 음낭을 상징하는 석류나무 열매 모양으로 만들었다.

    석류나무 꽃은 중국이나 우리의 역사 속에만 등장하는 꽃이 아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28장 33절)에는 대제사장이 입을 예복의 겉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달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포도와 함께 석류나무는 성서에도 여러 번 등장하며, 솔로몬 왕은 석류나무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종교화(宗敎花)에서는 석류나무가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15세기의 유명한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인 “성모의 석류”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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