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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 강제이주의 서글픈 역사, "라즈돌노예역(Razdolnoye Station)"
    해외 나들이/러시아(俄羅斯) 2015. 9. 25. 05:05

    고려인 강제이주의 서글픈 역사, "라즈돌노예역(Razdolnoye Station)"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을 하면 꼭 한번 들려야 할 곳이 있다.

    남부 핫산이나, 우스리스크에서 오는 길에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 驛이다.

    역 건너편에는 군부대가 있고 주변에는 우스리강이 흐르고 있으며 조금만 벗어나면

    러시아 노동자들의 주말농장인 다차가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이곳 저곳을 살펴봐도 주변에 볼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이곳은 한인들에게는 피눈물을 짜냈던 역이다.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의 일환으로 1937년 9월21일부터 11월15일까지 17만 여명에 달하는

    고려인 동포를 이곳 라즈돌노예역에 집결시켜 시베리아 횡단열차 화물칸에 태워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들판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던 서글픈 아픔을 지닌 역이다.

     

    소련이 강제이주를 시킨 이유는

    첫째는 연해주지역의 국경지방에 일본사람과 조선 사람이 외형적으로 생김새가 비슷해 식별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둘째는 조선 사람들은 군사전략상 부득이하게 간도지방과 접경한 러시아 국경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조선 사람을 모두 연해주에서 추방시켜 일본과의 전쟁에서 악재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제거를 했다.

    넷째는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발하여 전쟁 군량미 확보 등으로 경제적 안정이 목적이었다.

     

    공식적인 소련의 문서를 보면 124대의 수송열차에 3만6천442가구 17만1천781명이 탔으며

    이들은 모두 중앙아시아 10개 지역으로 수송 배치되었다.

    지금은 열차를 울란우떼에서 갈아타도 일주일 정도면 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어진 화물열차로 40여일 걸렸다.

    그리고 10월이 넘으면서 시베리아 삭풍이 휘몰아치면서 열차에서 굶어죽고,

    홍역과 학질 등의 병으로 앓아죽고, 날이 추워 얼어 죽는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60%에 달했다.

    우리의 서글픈 가슴 앓이, 서글픈 역사가 서려있는 역이다.

     

    그리고, 라즈놀노예역 근방에는 북한의 김정일이 태어난 집이 있다.

     

     

     

     

     

     

     

     

     

     

     

     

     

     

     

     

     

     

     

     

     

     

     

     

     


    진짜 김정일이 태어난 곳 - 아나톨리 李(2009. 12. 28.)

     

    1993년 2월 26일, 필자는 하바로브스크 고려인 ‘孫알렉산드르 미카일로비치’(이하 ‘孫아바이’) 집에서

    전날에 있었던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 방송을 보고 기겁하듯 놀랬다.

     “... 혈맹보다 민족을 우선하고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라는 연설을 듣고 흥분하여 보드카를 병체로 마시고

    눈밭으로 뛰어나간지 만 하루 만에 뒷뜰의 좁은 사우나 방에서 깨어났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유창한 ‘에브게니야’(孫아바이 부인)에게 내가 실수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제 한국은 망했다. 혈맹인 미국보다 김일성과 손잡고, 현대 정주영 회장한테 골탕 좀 먹었다고

    있는 사람 재산 다 뺏겠다고 하니 대통령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연설문을 써준 놈은 보나마나 빨갱이다.”라면서 길길이 뛰고 생난리를 부리면서

    보드카를 3병이나 더 마시고는 눈 속에 엎어지길래 큰 아이 샤샤가 업어다 사우나 방에 눕혔다고 했다.

    참으로 야속했다. 믿었던 YS께서 그렇게 황당한 연설을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우연일까? 그날 오후 중앙정보부 6국장 출신인 許모 국장의 국제전화를 받았다.

    許모 국장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 방송’과 관련해서 전직동료들이 같이 모여 의논한 결과

    “김일성과 김정일의 실체를 빨리 밝히지 않으면 세월을 놓칠 것 같아 모레쯤 사람을 보낼테니 협조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후 필자에게 찾아온 사람은 현직 요원이었고, 그가 가지고 온 문건은

    연해주 나데진스키郡 라즈돌리네邑 라즈돌리네 마을길 88번지(2층 빨간벽돌집) 주소와

    라즈돌리네邑 뽀브브카 마을에 거주하는 ‘엘냐’(당시 68세)라는 여자조산원을 찾는 것이었다.

     

     

    라즈돌리네 88번지

    라즈돌리네 지역은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목이라 필자가 평소 다니던 길이고,

    또한 북한으로 내려가는 철길과 도로의 초입이었고, 1937년 9월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실려 나갔던 역사적인 곳이라서 주민들 중에는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침 그곳의 가장 큰 ‘소프호즈’ 농장장인 ‘안드레이 게나지’의 동생이 읍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한국식의 호적등제부를 보고 금방 ‘엘냐’라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이하의 내용은 ‘엘냐’의 증언을 요원이 녹취한 것이다.

    『그날(1941년 2월 16일) 새벽쯤 얼굴색이 노란 젊은 동양사람 두 명이 아기를 받아달라고 황급히 찾아왔고,

    그들과 함께 약4km 눈길 속을 걸었다ㆍ업혔다 하며 겨우 산모가 있는 곳까지 왔다.

    당시 나는 간호양성학교를 막 졸업한 17살의 처녀이고, 조산원 면허취득 후 3번째 받는 아기가 동양사람 아기라서 기억이 또렸했다.

    그때 나는 조산원 경험이 부족하여 아기의 탯줄을 길게 잘랐는데,

    3년후 하바로브스크에서 아기를 만났을 때 배꼽이 남자의 그것처럼 튀어나와 아기엄마와 같이 웃었다.』라고 진술했다.

    또 계속하여 그녀는 말하기를 『라즈돌리네 88번지 2층 벽돌집 동쪽 문 2층 첫째 방에서 아기를 받았는데,

    산모(김정숙)와 일행들은 중국 동북에서 건너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며,

    조산원인 나를 옆에서 보조한 사람은 김애순(여자 통신병)이었는데, 산모에게 언니라고 불렸다.

    아기 아버지(김일성)는 추운 날씨에 먼 길을 와주었다고 털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는데,

    아기엄마가 짠 것이라고 하였고, 아기 아빠는 내가 반할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엘냐는 큰 길 옆에 있는 빨간 벽돌집 앞으로 몇 차례 지나 다니면서 잠깐씩 들려 아기를 보살펴주었고,

    조산원에서 가져온 아기 우유와 산모용 영양제도 주었다고 했다.

    그 해 6월 그곳을 지나니 항일독립군 대장인 아기아빠와 일행들이 사라져버려 그 집에 입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느 날 밤에 몽땅 기차를 타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년 반 후 하바로브스크 동북쪽 아무르강 하구인 강변도시 ‘비야츠코예’가 주소로 된 김정숙의 편지가 왔는데,

     “아기는 잘 자라고 있으며 그들은 그때 빨치산스키로 옮겨 몇 달 생활하다가 이곳 ‘비야츠코예’로 왔다면서

    혹시 하바로브스크에 오는 걸음이 있으면 꼭 찾아달라”고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엘냐’는 수석 조산원 연수차 하바로브스크 의과대학에 머물면서 김정숙과 아기를 만나러 73km 떨어진 ‘비야츠코예’로 가서

    3년 만에 만나니 아기엄마는 얼마 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면서 다음에는 딸을 낳겠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했고,

    그때 마당에서는 유라(정일)와 또 다른 동생(42년생으로 김애순의 아들)이 같이 놀고 있더라고 했다.

    우리측 요원이 김애순에 대하여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에 그녀는

    “유라가 김정숙의 뱃속에서 나올 때 바로 옆에서 도와주었던 여자가 바로 그 사람이고,

    그녀가 낳은 아기의 아버지가 김일성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라고 했다.

    엘냐의 진술은 이상으로 끝났는데, 집 앞에서 헤어지는 필자에게 귓속말로 그녀는 ‘비야츠코예’ 주둔 독립군 부대 이름이

    유라(김정일)가 태어난 집 번지와 같다면서 당신이 연구해볼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 「비야츠코예」 88여단

    필자가 하바로브스크에 갈 때마다 들려 안부를 전하곤 하는 고려인 ‘孫아바이’ 노인은 극동러시아 내에서 고려인들중 가장 마당발이다.

    그의 외아들은 필자가 1991년 비야츠코예를 찾아갈 때 위험지역이라면서 자진하여 안내를 했는데

    당시 극동관구 소속 KGB 소좌였고, 큰 사위는 북한임업대표부와 공동으로 투자하여 제재소를 운영하는 사업주였고,

    둘째 사위는 국경수비대 고급 무장경찰이다.

    또 둘째 사위의 아버지인 사돈 ‘金에릭’은 임업대표부와 공동으로 하바로브스크 시내에 「평양식당」을 운영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밀양孫氏 후예인 ‘孫아바이’는 여간 비중 높은 정보도 쉽게 찾아주었다.

    다음은 ‘孫아바이’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다.

    (1) 김애순(김일성의 사실상 두번째 부인)이 나은 김정일의 이복동생은 훗날 김일성의 혁명동지인 崔모라는 사람 밑으로 양자로 들어갔는데,

    어릴 때 김정일이 던진 돌에 맞은 후유증으로 약간 머저리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1960년대 이후의 정보는 없다고 했고

    (2) 1942년 여름 항일유격대장 周保中 부대밑으로 연해주 남야영지의 라즈돌리네팀과 빨치산스키팀,

    아무르강 타라바로프섬(2007년 중국에 반환된 지역) 유격대 등 팀 4~5개 조직들이 집결했다.

    스탈린 정권은 주보중에게 북야영지인 ‘비야츠코예’에서 더 크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기지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때 새로운 부대 이름을 8월에 뭉쳤다고, 주보중 부대원의 숫자가 제인 많은 80명이라서, 등등으로

    8자(중국에서는 복과 돈이 들어온다는 숫자이고 발음도 같음)를 붙이기로 했는데,

    당시 재롱떠는 아기는 김정일이 유일했고, 88번지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뜻에서

    88이라고 주보중이 정했음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이 부대가 바로 88여단이다.

    필자는 김애순과 김정일과의 관계되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되는대로공개할 것이다.

    한국에는 김정일이 태어난 곳을 사실대로 명기한 곳은 鳥頭山 전망대 통일각뿐이고,

    친북, 좌ㆍ빨 뿐만 아니라 북한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이것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발 공부 좀 하라고 충고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라즈돌노예(Razdolnoye, Раздольное) 마을 부근 지도 : 구글 맵
    라즈돌노예(Razdolnoye, Раздольное) 마을 부근 위성 사진 : 구글 맵


     

     


    관광 가이드(조미향 선생)가 소지하고 있는 자료를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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