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Today
Yesterday
Total
  •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시인 안도현 시화전
    국내 나들이/전시관(展示館) 2015. 10. 23. 05:34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시인 안도현 시화전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시인 안도현 시화전 전시가 2015년 9월 15일부터 10월 18일까지

    전북 군산에 소재한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산돌갤러리)에서 열렸다.

     

     

     

     

    "내 몸의 비늘보다 마음 속을 들여다봐주렴"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가을 엽서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그래도, 아직은 ,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 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멸치가 마르는 시간 바다는 잠잠하였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그물은 멸치를 잊었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법원과 학교가 세워졌고

    멸치가 마르는 시간 법원의 새로 칠한 페인트는 꾸덕꾸덕해졌고

    멸치가 마르는 시간 학교 아이들의 검은 눈은 하얗게 바랬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철교의 허리가 뒤틀렸고

    멸치가 마르는 시간 장미의 눈빛은 딱딱해졌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모든 고립은 해방이 되고

    멸치가 마르는 시간 모든 초원은 감옥이 되었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바람의 전쟁이 터졌다.

    멸치가 마르는 시간 해일이 낮게 엎드려 해안으로 밀려왔다.

     

     

     

     

    연어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 냈니?”

    은빛 연어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그는 알을 낳는 일보다 더 소중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가 찾으려고 헤멨던 삶의 의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 희망이란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럼 결국 희망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니?

     

    은빛연어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아버지의 런닝구

     

    황달 걸린 것처럼 누런 런닝구

    대야에 양잿물 넣고 연탄불에 푹푹 삶던 런닝구

    빨랫줄에 널려서는 펄럭이는 소리도 나지 않던 런닝구

    백기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걸려 있던 런닝구

    어린 막내아들이 입으면 그 끝이 무릎에 닿던 런닝구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게를 많이 져서 등판부터 구멍이 숭숭 나 있던 런닝구

    너덜너덜 살이 해지면 쓸쓸해져서 걸레로 질컥 거리던 런닝구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방바닥에 축 늘어져 눕던 런닝구

    마흔 일곱살까지 입은 후에 다시는 입지 않는 런닝구

     

     

     

     

    모퉁이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

    .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

    .

    골목이 아니야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거야

    남자가 아니야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거야

     

     

     

     

     

    어른

     

    어른들이란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끔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하는 존재,

    그리하여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속에 그것을

    막무가내 우겨 넣는 존재이다

    어른들이란,

    우길줄만 알지

    정작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

     

     

     

     

    관계를 맺는다는 게 뭐지?

    그건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철길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앞서거나 뒤서지도 말고 이렇게

     

    서로 그리워하는 만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거리가 있는 우리

     

    나란히 (언제까지나)

    떠나가리 (그대와 함께)

    늘 이름 부르며 살아가리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그날까지 그날까지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주먹밥

     

    아무리 화나도

    휘두르지 않아요.

    주먹을 쥐고

    꾹꾹 참아요.

    아무한테나 주먹을

    휘두르는게 아니죠.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332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