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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서원(陶山書院) - 사적 제170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12. 4. 06:21

    도산서원(陶山書院) -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宣祖) 7년(1574년)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享祀)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영지산(靈芝山)을 뒤로하고 동취병(東翠屛), 서취병(西翠屛)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安東湖)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렸고, 편액은 선조 8년(1575)에 석봉 한호(石峯 韓濩)가 썼다.

    이 서원은 영남유림(嶺南儒林)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대원군(大院君, 李夏應) 서원철패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존 정책에 따라 성역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건물을 보수하고,

    유물 전시관인 옥진각(玉桭閣)을 신축하여 퇴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산서원 소유의 고서(古書) 1300여종 5,000여 책과 퇴계문집을 비롯한

    목판 총37종 2,790판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토계리) =

     

     

     

     

    추로지향(鄒魯之鄕)

     

    도산서원 들어가는 길목에 추로지향 이란 비석이 서 있는데,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 박사가

    도산서원의 원장자격으로  상덕사(常德祠)를 알묘한 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경신년(1980) 12월 8일 삼가 도산서원에 나아가 퇴계선생의 신위에 절한 뒤

    강당에 올라 남겨주신 원규(院規)를 읽고서 흠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여 이를 돌에 새겨서 기록하다.

    곡부(曲阜) 공덕성(孔德成)은 쓰다"

     

    '퇴계 선생을 추나라의 맹자, 노나라의 공자와 같이 대학자이고, 성인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퇴계란 이황 선생의 호(號)인데 '퇴거계상(退居溪上)'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벼슬에서 물러나 시내 위에 집을 지어 물욕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사단(試士壇)

     

    도산서원(陶山書院) 앞 낙동강(洛東江) 건너편 비각(碑閣)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지방별과(地方別科)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正祖大王)께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정조 16년(1792년)에 관원(官員) 이만수(李晩秀)를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祭文)으로 제사(祭祀)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松林)에서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는데,

    응시자는 7,228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다.

    비문(碑文)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水沒)로 송림(松林)은 없어지고 단(壇)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科擧)의 자리를 표(標) 해두고 있다.

    시사단(試士壇)은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1501년)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년)에 돌아 가셨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 되었다.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師表)가 되셨다.

    선생은 명종 16년(1561년)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 (1574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 하였다.

    1970년에 정부에서는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계몽전의,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예안향약, 자성록 등이 있다.

     

     

     

     

     

    이 곳은 1970년 12월 8일 박정희 전대통령이 도산서원 성역화사업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의 금송을 옮겨 심었던 곳이나 1972년 고사(死)됨에 따라

    1973년 4월 동 위치에 같은 수종(樹種)으로 다시 식재하였다.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玩樂齋)"라 하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하였다.

     

     

     

     

     

     

     

    도산서원 광명실(陶山書院 光明室)

     

     

     

    광명실은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도서관(藏書庫, 장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진도문(進道門)을 가운데 두고 東, 西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濕害)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樓閣)으로 지었다.

    광명(光明)은 "만권서적(萬卷書籍) 혜아광명(惠我光明)", 즉 '수많은 책이 나에게 광명을 준다'는 뜻이다.

     

     

    동광명실(東光明室)

    1819년(순조19년)에 세워진 동광명실에는 역대왕의 내사서적(內賜書籍)과

    퇴계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手澤本)을 보관하였다.

    원래는 동광명실만 있었으며 서광명실은 근대 들어 증건(增建)하였다.

     

    서광명실(西光明室)

    1930년(庚午年) 동광명실을 본 따 지었으며,

    이 역시 2층 구조의 누각건물로 서원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히 문도를 비롯한 국내 유학자의 문집 등 근래에 발간된 각종 책들이 있다.

    이곳에는 일본 유학자인 손시교쿠수이(村土玉水)가 편찬한 “퇴계서초(退溪書抄)”가 있어

    퇴계학이 일본 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광명실과 함께 모두 1,271종 4,917권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전국 서원 가운데에서 장서로는 고서와 진본이 유명하다.

    보관된 각종 문적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진도문(進道門)

     

    진도문(進道門)은 도산서원에 출입하는 정문으로 '도리(道理)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진도(進道)란 '학문(學文)을 하여 나아간다는 뜻',

    그리고 '도(道)를 밝히는 것은 우매한 것 같이하고 도(道)에 나아 감에는 물러 서서는 안된다'란 뜻을 담고 있다.

    도산서원을 참관하려면 반드시 이 문을 거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기둥에 큰 북이 달려 있는데 그것은 잡배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으로 달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

     

    서원(書院)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전교당(典敎堂)은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된 대강당이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閑存齋, 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선조가 하사(下賜)한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글씨이다.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0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도산서원 현판(陶山書院 懸板)

     

    도산서원 사액(賜額)에 얽힌 이야기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韓石峯)의 필체인데,

    선조(宣祖)가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에게 편액(扁額)을 쓰게 했다.

    선조는 석봉이 놀라지 않게 사액 내리는 서원 이름을 거꾸로 쓰게 해서

    왼쪽에서부터 '원서산(院書山)..'까지는 올바르게 쓰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도(陶)자에서 퇴계 선생을 기리는 서원임을 알고 너무 가슴이 뛰어

    도(陶)자의 한 획인 “뫼 산(山)”자를 “바를 정(正)”자로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산서원의 편액과 안내문의 "도"자는 서로 다르다.

    이렇게 존경받던 퇴계 이황선생은 오늘날에도 가장 서민적인 지폐인 1천 원권의 인물로 우리 곁에 있다.

     

     

     

    도산서원 상덕사 부 정문(陶山書院 尙德祠 附 正門) - 보물 제211호

     

    도산서원(陶山書院)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尙德祠)는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상덕사(尙德祠)를 드나드는 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은 상덕사(尙德祠)를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앞면 기둥은 계단 높낮이 때문에 다른 기둥보다 길이가 길다.

    정문 양옆으로 사당 주위를 둘렀던 토담은 1969년 보수공사 때 돌담장으로 모두 바꾸었다.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의 위패와 제자인 월천 조목(月川 趙穆)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매년 춘.추(음력 2월.8월)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장판각(藏板閣)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 문집(文集), 유묵(遺墨), 언행록(言行錄), 병서(屛書),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등의

    목판 2,790장이 보관되었다가 2003년 5월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고직사(庫直舍)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 하, 두 고직사가 있다.

     

     

     

     

     

     

     

     

     

    역락서재(亦樂書齋)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鄭士誠)을 비롯한

    뜻 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천연대(天淵臺)

     

    계 선생께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심성수양을 위해 산책하시던 곳이다.

    "시경(詩經)" 중의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 연비려천 어약우천)"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 이름하였다.

     

     

     

     

     

     

     

     

     


    한국(韓國)의 서원(書院)’20197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9곳을 세계유산에 등재하였다.

    포함된 서원 9곳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남계서원(경남 함양),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필암서원(전남 장성), 도동서원(대구 달성), 병산서원(경북 안동),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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