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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수안보성당(天主敎 水安堡聖堂)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5. 12. 29. 04:25

    천주교 수안보성당(天主敎 水安堡聖堂)

     

    1962년 8월 1일 정안빈( (R.M. Lilly, 로베르토) 신부가 수안보 공소 신부로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2월20일 수안보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정 로베르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설립 당시 지곡 본당(현 지현동 본당)으로부터 수회공소를, 괴산 본당으로부터 장연. 연풍 공소를 이관 받았으며,

    2011년 8월 16일 연풍 공소가 준본당으로 분가하였다. 주보성인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메리놀 소속이었던 초대 본당 주임 정안빈(로베르토) 신부님은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이라 일컫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게서 영적인 힘을 얻으며, 주보성인으로 삼게되었다.

    수안보(水安保)"라는 지명은 "보(洑) 안쪽의 물탕거리" 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로 변천된 것으로,

    18세기초 최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최초로 지명이 기록됨.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조산공원길 84 (온천리) = 

     

     

     

     

     

     

     

     

     

     

     

     

     

     

     

     

     

     

     

     

     

     

     


    수안보성당 연혁

     

    현재의 수안보 인근인 연풍 지역에는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에

    이미 충주 지역으로부터 복음이 전파되면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1842년 무렵에는 성 황석두(黃錫斗, 루카)에 의해 연풍 병방골(현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 가정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나,

    이 가정 공동체는 1858년 황석두의 가족들이 충청도 홍산으로 이주하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이후 성 황석두는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체포되어 충청도 갈매못(현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순교하였고,

    그 시신은 홍산 삽티(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에 안장되었다가 고향인 병방골의 평해 황씨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수안보 지역의 신앙 공동체가 다시 교회사의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광복 이후였다.

    즉 1955년 말 충주 본당의 옥보을 요셉(J. Borer) 신부에 의해 ‘수안보 공소’(안보리)가 설립되고,

    1858년 초에는 ‘수회 공소’(수회리)가 설립되었으며, 1960년경에는 지곡 본당 관할의 ‘온천 공소’(온천리)가 설립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주대목구장 파 야고보(J. Pardy) 주교는 1962년 8월 1일 충주 본당의 보좌로 재임하던

    정안빈 로베르토 신부를 지곡 본당 관할 수안보 공소 신부로 임명하였다.

    당시 지곡 본당에는 충주 본당에서 이곳으로 전임해 온 옥 요셉 신부가 재임하고 있었다.

    이어 파 주교는 6개월 뒤인 1963년 2월 20일 수안보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킴과 동시에

    정 로베르토 신부를 그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고, 정 신부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본당 주보로 정하였다.

    이에 앞서 1962년 수안보 공소에 부임한 정 로베르토 신부는 성당의 첫 번째 부지(현 온천리 143-3번지)를 매입한 뒤

    경당과 사제관 공사를 시작하여 1962년 12월 15일에는 이를 완공했으며, 같은 해의 성탄 자정 미사를 새 경당에서 봉헌하였다.

    또 본당으로 승격된 이후인 1964년 7월에는 새 성당(126평) 기공식을 가진 뒤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29일에는 이를 완공하고, 파 야고보 주교의 집전 아래 축성식을 가졌다.

    1963년 6월 말 수안보 본당의 신자수는 3개 공소에 318명을, 다음해 6월 말에는 4개 공소에 436명을 기록했으며,

    1969년 6월 말에는 5개 공소에 1,102명까지 증가하였다.

    이들 공소는 본당 승격 당시 지곡 본당에서 이관된 수회 공소, 괴산 본당으로부터 이관된 장연․연풍 공소를 비롯하여

    1963년 4월에 설정된 미륵리 공소(현 수안보면 미륵리), 1963년 12월 8일에 괴산 본당에서 이관된

    태성 공소(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등이었다. 이중에서 태성 공소는 훗날 괴산 본당으로 다시 이관된다.

    본당에서는 1966년 9월 18일에 수녀원을 건립하고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 분원은 1971년에 폐쇄되었고, 다음해에는 기존의 수녀원 건물에

    성심맹아학원(중등부)이 설립되었다가 1978년 지현 성당의 맹아학교에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본당에서는 같은 해 5월 1일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재설립하고, 옛 맹아학원 건물에 복자 진료소를 개설하였다.

    한편 연풍 공소에서는 1963년 3월 공소 경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연풍면의 옛 순교 터 인근에 있는 옛 연풍현의 향청(鄕廳)을 매입했는데,

    이듬해 경당 앞마당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형구돌을 발견하였고, 1972년에는 다시 두 번째 형구돌을 발견하였다.

    그러면서 천주교 박해기의 순교 터로 알려져 온 연풍성지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이어 교구 순교자 현양대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1977년에는 순교 터가 매입되었다.

    한편 황석두(루카) 성인의 유해는 1980년 7월 9일 병방골 현지에서 발굴되어 수안보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982년 8월 25일의 천묘식을 거쳐 현재의 연풍성지로 이장되었다.

    초대 주임 정 로베르토 신부는 1992년 8월 31일 연풍성지 담임 신부로 전임되었다.

    동시에 2대 주임으로 임명된 김광명(아우구스티노) 신부는 1994년 5월 1일부터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고,

    이 사제관은 3대 주임 유민성(베드로) 신부 재임기인 1995년 1월 15일에 축복되었다.

    이어 1995년 4월 16일부터는 성전보수를 위한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 운동을 시작하여

    1997년 7월 초에는 성당 내부 보수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4대 주임 조성학(라우렌시오) 신부 재임기인 1997년에는 제천 송계리 지역이 본당 관할 지역으로 이관되었다.

    이에 본당에서는 사목 관할 구역을 네 개 구역으로 재정비하고 소공동체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5대 주임 황광현(요셉) 신부는 교육관 보수 공사를 준비하였고,

    6대 주임 이준연(사도요한) 신부 재임기에는 옛 사제관과 수녀원을 교육관으로 개조하여 피정 및 교육의 장소로 활용했으며,

    2007년 3월 25일에는 본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7대 주임 이현태(베드로) 신부 재임기인 2008년 2월 10일에는 본당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상을 제작 안치했으며,

    가정 성화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였다.

    8대 주임 조덕희(대건안드레아) 신부 재임기인 2011년 8월 16일에는 연풍 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되어 분가하였으며,

    2011년 11월 28일에는 경찰학교 경당을 봉헌하였고 본당 50주년 준비하였다.

    9대 주임 박규성(미카엘) 신부가 2013년 4월 14일 50주년 행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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