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 8경일상생활속에서/나라사랑 2016. 1. 24. 23:11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 8경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해남군에서는 역사스토리 테마길로 조성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과 건곤일척의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이 전라남도 일대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병참물자와 군량미를 확보한, 이른바 조선수군 재건로를 따라가는 “명량으로 가는 길” 안내 책자와 지도가 전라남도에서 펴낸바 있다.
이 책자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1597년 8월 3일(양력 9월 1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후
전라남도 일대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이 소상히 담겨 있다.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 과정은 구례에서 황대중 등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해 곡성, 순천, 보성으로 이어졌다.
일본군이 뒤쫓아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군사와 군기, 군량, 군선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조양창과 양산원의 집을 비롯 열선루, 백사정, 군영구미가 보성에 속한다.
장흥 회령포, 해남 이진과 어란, 진도 벽파진, 다시 해남 우수영으로 이어지는 노정이다.
이순신은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순천에선 무기와 대포, 화약, 화살을 구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다.
조정의 수군 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는 내용의 장계를 써서 상소를 올린 곳도 보성이었다.
장흥에선 조선수군의 남은 함대 12척을 회수해 수군의 면모를 갖췄다.
이순신은 이렇게 재건한 조선수군으로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조정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수군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라남도 일원에서 조선수군 재건에 성공한 결과였다.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은 남도 백성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명량으로 가는 길>은 당시 이순신이 조선수군을 재건하면서 지났던 이 길을 따라간다.
내륙의 길은 내륙으로, 바닷길을 통해 이동을 한 장흥 회진(회령포)에서 해남 이진과 어란,
진도 벽파, 해남 우수영으로 가는 길은 뭍에서 조망하는 구간으로 대신한다.
길은 전남 연해안 8개 시·군을 연결하며 총 연장 500㎞에 이른다.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는 걷는 길 80㎞와 자전거 길 40㎞, 자동차 길 380㎞로 이뤄져 있다.
지역별로는 구례 37㎞, 곡성 64㎞, 순천 78㎞, 보성 60㎞, 장흥 75㎞, 강진 68㎞, 진도 12㎞, 해남 106㎞ 등이다.
구례(求禮): 장정과 병사를 모으다.
곡성(谷城): 군관들과 수군 재건을 논하다.
순천(順天): 무기와 화살을 구하다
보성(寶城): 식량을 선적하다
장흥(長興): 해상출전을 결의하다
강진(康津): 해상기동 추격전을 벌이다
해남(海南): 아침 일찍부터 우수영 바다에서 명량대첩을 이루다.
진도(珍島): 저녁 늦게까지 벽파진 바다에서 명량대첩을 이루다.
3550 '일상생활속에서 > 나라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우내 3.1운동 독립 사적지(추모각) (0) 2016.02.29 유관순열사 유적(柳寬順烈士 遺蹟) - 사적 제230호 (0) 2016.02.28 K리그 30년을 빛낸 최고의 선수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11” (0) 2015.11.23 프랑스테러 희생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0) 2015.11.17 단기 4348년 개천절기념 하늘열림 큰잔치(수원광교공원) (0) 201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