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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불교의 중심 도량 두륜산 대흥사(頭輪山 大興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3. 19. 05:10

    조선 불교의 중심 도량 두륜산 대흥사(頭輪山 大興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는 근대 이전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위치하여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종가집으로 그 역활을 다해온 도량이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서산대제 및 나라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하였고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써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구림리) =



    頭崙山 大芚寺(두륜산 대둔사) - 대흥사(大興寺)의 옛이름 대둔사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명을 받아 4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고, 8부 신장을 지배하여 불법을 수호한다.

    제석천왕의 휘하에 있는 장군 중에 금귀대장과 수조대장이 있는데,

    금귀대장(禁鬼大將)은 사찰과 인간들에 대한 귀신들의 침범을 막아주고,

    수조대장(受詔大將)은 사람들의 지극한 소원을 받아서 제석천왕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대흥사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마귀(재액)의 침범을 막아주고 그들이 바라는 소원을 들어서

    제석천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오늘도 대흥사의 일주문 앞에서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頭崙山 大興寺(두륜산 대흥사)





    禪林敎海滿華道場(선림교해만화도량)


    대흥사 일주문 뒷면엔 "선림교해만화도장(禪林敎海滿華道場)"이란 현판은

    서산대사가 저술한 "선가귀감"에서 말한 "禪(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敎(교)는 부처님 말씀"에서 연유했다.

    즉 부처님 가르침이 숲과 바다 같이 자리한 도량이다.
    그래서 대흥사는 한국불교 종통을 이어왔다(宗統所歸之處).

    풍담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만화 스님으로부터 범해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강사를 낳았다.

    그리고 초의 스님으로 인해 우리나라 차문화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십삼대강사도량(十三大講師道場) 석주(石柱)


    대흥사는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할 것을 당부한 이래

    13 대종사와 13대강사가 선맥(禪脈)과 강맥(講脈)을 이어간 선교(禪敎 양종(兩宗)의 총본산이다.


    13 대종사는 ① 해동 화엄종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풍담 의심(楓潭 義諶) ② 담론을 잘해 많은 사람을 교화했던 취여 삼우(醉如 三愚)

    ③ 화엄의 도리와 백가(百家)에 통달했던 월저 도안(月渚 道安) ④ 육신보살로 칭송받았던 화악 문신(華嶽 文信)

    ⑤ 계행을 청정하게 가졌던 설암 추붕(雪巖 秋鵬) ⑥ 전국을 순방하며 화엄대회를열었던 환성 지안(喚惺 志安)

    ⑦ 학문이 유학자사이에서도 명망이 높았던 벽하 대우(碧霞 大愚) ⑧ 검소와 청빈의 생활로 평생을 살았던 설봉 회정(雪峯 懷淨)

    ⑨ 문자를 떠난 곳의 진리를 설파하며 마음의 근원을 찾도록 가르친 상월 새봉(霜月 璽封)

    ⑩ 대둔사 정진당에서 늘 화엄법회를 열었던 호암 체정(虎巖 體淨) ⑪ 인욕행이남달리 뛰어났던 함월 해원(涵月 海源)

    ⑫ 대승경전에 통달하여 많은 저술을 남긴연담 유일(蓮潭 有一) ⑬ 한국다도의 중흥조 초의 의순(草衣 意恂) 스님 등이다.

    이들 중 삼우·문신·회정·새봉 스님은 청허 스님의 문하 소요 태능(逍遙 太能)의 문손이고

    그외 스님은 청허 스님의 직계 수좌였던 편양 언기(鞭羊 彦機) 스님이다.

     

    13 대강사는 모두 10 대종사 체정 스님의 문도들로 대승경전에 일가견을 이룬 분이다. ① 만화 원오(萬化 圓悟)

    ② 연해 광열(燕海 廣悅) ③ 영곡 영우(靈谷 永愚) ④ 나암 승제(懶庵 勝濟) ⑤ 영파 성규(影波 聖奎) ⑥ 운담 정일(雲潭 鼎馹)

    ⑦ 퇴암 태관(退庵 泰瓘) ⑧ 벽담 행인(碧潭 幸仁) ⑨ 금주 복혜(錦州 福慧) ⑩ 완호 윤우(玩虎 尹佑) ⑪ 낭암 시연(朗巖 示演)

    ⑫ 아암 혜장(兒庵 惠藏) ⑬ 범해 각안(梵海 覺岸) 스님 등이다.







    무염지(無染池)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無染池) '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곳‘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의 연못,

    실용면에서는 '향로봉의 화기를 막는다' 는풍수에 근거하고 있으며 실제로 화재시 물공급지의 역할도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무염지의 전체적인 배치는 절묘한 굴곡모양 연못과 중심에 위치하지 않은 작은섬을 만들어 놓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며, 특히 절에서 바라보면  마음'심 (心)자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누워 계시는 형상의 대둔산







    대흥사의 사무를 보는 종무실






    범종루(梵鐘樓)




    가허루(駕虛褸)


    남원(南院)의 출입문으로, 사찰의 중심에 있다. 휘어진 자연목으로 만든 문턱을 넘어 짧은 통로를 지나가면

    천불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을 비롯해 용화당·동국선원·봉향각·승방 등이 나온다.
    단층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건물 중앙은 통로로, 나머지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좌우측에는 돌벽을 쌓았으며, 뒷면은 판장문으로 단장하였다.

    ‘가허루(駕虛褸)’라는 현판 글씨는 비운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이 썼다. 








    천불전(千佛殿) - 보물 제1807호


     천불전은 높이 쌓은 석축단(石築壇) 위에 낮은 기단(基壇)에 세운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자연석(自然石) 기초(基礎) 위에 일부 괴목(槐木)으로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보이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작(多包作)을 꾸몄다.
    건물 앞면에는 궁창판에 안상(眼象)을하였고 정교(精巧)한 국화무늬(菊花紋)·

    연화무늬(蓮華紋)의 꽃살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중앙칸은 3짝, 좌우협칸(左右夾間)은2짝이다.
     

    내부 중앙에 목조(木造)의 본존불(本尊佛)을 봉안(奉安)하였으며 주위에 옥석(玉石)으로 조각한

    천(千)의 작은 불상을배열(配列)한 것이 특이(特異)하다.

    기록에는 순조(純祖) 11년(1811) 불탄 것을 동(同) 13년(1813)에 중건(重建)하였다고 한다.

    순조 11년(1811)에 불에 탄 뒤 2년 뒤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의 중앙에는 목조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6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천 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있다.





    용화당(龍華堂)


    대흥사 천불전 서쪽 있는 요사로 정면 8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층 팔작지붕이며 익공양식으로 매우 단조로운 건물이다.

    승려의 교육학당인 강당 겸 선방(禪房)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玩虎)대사가

    1811년(순조 11)에서 1813년 준공하였다. 그뒤 이용에 편리하도록 증축된 부분이 있다.

    건물의 남쪽은 ‘ㄱ’자로 꺾여 돌출시킨 부분이 있어 맞배지붕을 얹어 연결시켰고, 다른 쪽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남쪽에는 온돌방 3개와 부엌을 놓고 건물의 가운데에는 큰 선방과 그 북쪽으로 작은 방 2개가 있다.

    이 선방의 동서면에는 큰 퇴와 작은 툇마루를 두었고,

    부엌 쪽에는 넓은 다락방을 위쪽에 두어 부엌 한쪽에서 오르내리는 계단을 두었다. 
    건물 외벽에는 세살문, 붙박이 살창, 판벽 등을 만들었다.

    기둥 일부의 주두(柱頭) 위에는 연화(蓮華)를 조각한 주심포작(柱心包作)을 꾸몄다.

    전면 외부포작의 공법이 초익공인데 그 초각이 매우 간략하여 좌로부터 다섯번째까지만 익공양식이다.
    자연석 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나 왼쪽에서 여섯번째 기둥만이 네모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두리기둥에는 배흘림을 두었다.

    전면 처마도리는 각을 둥글린 납도리인데 받침장혀를 대고 덧장혀로 받쳤으며 소로를 끼워 창방을 보냈다.
    종도리도 역시 각을 죽인 납도리로 장혀만 받쳤으며 동자주대공으로 지지되었다.

    대들보는 자연목을 사용하였다. 후면 처마도리는 모접이 납도리를 장혀가 받치도록 한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침계루(枕溪樓)


    북원의 출입문으로 남ㆍ북원을 가로지르는 계류 금당천(金塘川)에 면하여 자리한 2층 누각건물이다.

    심진교를 지나 누 아래의 어칸 통로를 통해 중정으로 출입하며,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다.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건물로 낮은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그 몸체를 구획지었다.

    중층 누각건물로 하층은 돌담과 판장문으로 마감한 광으로 구성되며, 상층은 평면에 널마루를 깐 홀로 이루어진 강당류의 평면을 구성한다.

    건물 외부는 대웅전을 향한 내벽을 제외하고 삼면을 판벽과 판문으로 처리하였으며,

    어칸에는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골기있는 필법의 ‘침계루(枕溪樓)’ 편액과

    그 배면에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 쓴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내부기둥이 없는 오량가구를 구성하여 상부 서까래 사이로

    회골이 드러나는 연등천장을 단장하고 있으며, 상하의 기둥을 서로 분리하여 상하층의 쓰임새를 구분짓고 있다.

    건물은 30평의 규모로 상층에는 법고와 1587년명 범종ㆍ목어ㆍ운판 등 사물이 봉안되어 있으며,

    좌우 측벽으로 감실형 틀 속에 금어 현암(玄菴)이 조성한 사천왕탱이 걸려 있다.

    이외 대흥사의 사적과 내력을 알 수 있는 ‘대웅전중창상량문(大雄殿重創上樑文)’과

    ‘중조성천불기(重造成天佛記)’ 등 24기의 현판과 시액이 침계루 사면에 걸려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흥사의 중심법전으로 대흥사 가람 북원에 자리한다. 심진교와 침계루, 대웅보전이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며,

    여기서 직교하여 좌측에 대향각과 우측에 백설당이 중정을 형성하며 배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건물이다.

    건물은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여 평방을 얹었다.
    공포는 다포로 내삼출목(內三出目)ㆍ외이출목(外二出目)을 주간마다 2구씩 공간포를 놓았으며,

    건물 안팎으로 화려한 조각솜씨를 뽐내듯 처마 아래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포의 형상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외부로 뻗은 쇠서 위에 연봉을 조각하였으며,

    내부는 모양을 판형으로 만들어 운봉형(雲峰形)으로 단장하였다.

    건물 전면은 주간 모두 2분합의 두툼한 빗살문을 달고 하부 2단을 구획하여

    화려하게 수장된 안상문양과 태극문을 궁방에 치장하였다.

    측면과 배면에는 중인방까지 막돌을 쌓아, 상부에 팔상도와 법당을 수호하는 사천왕도를 벽화로 장엄하고 있다.














    보현전


    대흥사의 남원(南院) 쪽, 사찰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보현전.  정면 7칸, 측면 4칸의 전각으로, 조성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까이에 또 다른 신생불전인 문수전이 있다.
    안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보현전과 그 앞마당에서는

    학술강연, 산중총회, 연수교육, 작은 음악회, 녹차관련 행사, 수련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흥사의 남원(南院) 쪽, 사찰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문수전







    대흥사 경내에 있는 큰 바위에도 4개의 공적비를 나란히 새긴 마애비가 있는데,

    대흥사에 공적이 있었던 군수(郡守), 병사(兵使) 등의 벼슬을 지냈던 분들을 기리는 비가 있다.











    해탈문(解脫門)


    부도밭을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천왕문 대신 해탈문이 나타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있으며, 현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와

    ‘해탈문(解脫門)’의 글씨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쓴 것이다.

    외부에는 협칸 3면에 도륜(道倫) 박태석(朴泰錫)이 그린 ‘부모은중(父母恩重)’ㆍ‘염화신중(拈花神衆)’.

    ‘점성가제도(占星家濟度)’ 등이 주제별로 장엄되어 있으며, 2002년 해탈문 건립 당시 단청과 함께 조성되었다.

    대흥사 해탈문에는 특이하게 사천왕상이 없다.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님이시여!!


    지나온 뒤안길이 업보(業報)인듯 겨운 날은

    그리운 생각들을 연꽃으로 피워놓고

    가냘픈 숨결을 모아 불러보는 님의 노래

    번뇌는 백도 여덟 차라리 염주로 헤면

    노을 겹겹 밀려오는 이아픔의 둘레밖엔

    결 고운 목탁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오고

    갈피 그 가슴으로 젖어오는 사랑을 두고

    손 모아 우러르면 눈이 환환 미소인데

    이 밤 사 부처님 앞에 합장(合掌) 하는 마음인가

     

    헌월 詩





    오는 것은 거절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며

    자신에게 잘 대해 줄 것을 바라지 말고

    지나간 일을 원망하지 말라.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에 의지하면

    도리어 화(禍)가 따르는 법이다.


    - 숫타니파타 -





    人生(인생)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 구름 원래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죽고 살고 로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 서산대사 해탈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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