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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호정(方壺亭)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3. 24. 05:30

    방호정(方壺亭)


    방호정(方壺亭)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달래고 지역의 미풍양속을 가르치고 시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1930년에 지방 유지들이 세운 정자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정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구조로서 중앙에는 1칸 규모의 온돌방이 있고 그 좌우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주위를 개방시켰다.

    방호정 건립과 함께 결성된 방호정 시사원(詩社員)은 매년 봄과 가을에 두 번의 시회(詩會)를 열어

    옛 선비들이 자연을 노래하며 노는(음풍농월) 흥취를 계승하여 왔으며 1936년 정자의 왼쪽 암벽에 시사원의 이름을 새겨 두었다.


    방호정은 지리산의 한 골짜기가 이룬 빼어난 승경지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의 거대한 암반 위에 축대를 쌓아 대지를 형성하였다. 다듬돌로 세벌대기단을 만들고

    높은 주춧돌 자리에 잘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아 단일 부재인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보아지를 끼워넣고 두꺼운 창방을 걸친 다음 주두를 놓았다.

    주간에는 창방과 장혀 사이에 4구의 소로 설치하여 수장집으로 하였다.

    대들보를 양측의 평평한 기둥위에다 걸치고 낮은 동자주를 세운 다음 종량을 얹어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량과 대들보 사이에는 충량을 측면 방향으로 빼내었고 합각부에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가구의 치목과 짜임이 잘되어 있으며 추녀부분의 선자서까래가 뚜렷하다.

    바닥의 구성은 중앙칸에 방을 들였고 좌우와 전면은 누마루를 깔았다.

    뒷면은 심벽과 판장벽을 두었고 방의 3면을 모두 4분합 들어 열개문으로 하여 걸쇠로 서까래에 걸어 매달았다.

    뒷면을 제외한 3면에는 계자난간을 돌렸는데 하엽과 두겁대 부분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정자 내부에는 기문 40여 개가 걸려 있다.

    최초 방호정 건립과 함께 결속된 방호정 창립 시사원은 총 44명이었으며,

    이후 이들은 매년 춘추 2회의 시회(詩會)를 열어 옛 선비들의 음풍영월(吟風詠月)의 흥취를 계승하여 오고 있다.

    이후 방호정 시사원들은 1936년 정자의 좌측인 동편 암벽에 「방호시사원(方壺詩社員)」(1936년)이라 제목하고

    창립회원 정와 김종진 외 43명의 이름을 새겨 두었고, 이어 정확히 어느 때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1차로 추가 모집한 14명의 이름도 정자 뒷편의 암벽에 새겨두었다.
    정자 앞은 약 10여 미터의 절벽으로 그 아래는 계곡천이 흐르고 있으며,

    정자 입구에는 1991년에 세웠던 <방호정시사원건립비>가 위치한다.

    이 비문의 내용은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던 연유와 창립회원 및 1차 추가 회원의 명단을

    암벽에 새겨 두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석면이 마멸될 염려가 있으므로 2차 회원 모집과 함께

    시사원들의 이름을 일괄 등재한다는 내용이 간략히 기재되어 있다.

    창립시사원 44명은 호와 이름을 연령순에 따라 등재하였고,

    이어 1 2차 추가 모집하였던 시사원의 이름은 무순으로 등재하였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2호(1984년 2월 29일 지정)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839-3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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