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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미륵사지석탑(서탑) 해체보수 현장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5. 9. 23:00

    익산 미륵사지석탑(서탑) 해체보수 현장


    국보 제11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석탑 서탑을 해체해 보수키로 한 것은

    1999년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의 보수정비사업단이 무려 14년에 걸쳐 해체와 복원연구를 진행해왔다.
    1992년 전라북도 주도로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은 새로운 석재를 사용했다가 “20세기 석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서탑 복원에는 원래 부재를 최대한 살려내도록 한 것이다.

    1915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붕괴를 막기 위해 탑에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이번 복원에는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없어진 돌들을 채워 넣는다. 탑의 남서측에 쌓은 석축(石築) 일부를 활용한다.

    이 석축은 조선 정조 때 문헌 ‘와유록(臥遊錄)’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전부터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탑에서 떨어져 나온 석재로 조성됐다.

    석탑 보존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21세기에 이르러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본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는 복원 과정에는 부재 보강처리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석축의 돌로도 해결할 수 없는 유실된 석재는 미륵사지 서쪽으로 10㎞ 떨어진 황동면에서 석재를 가져와 깎아 붙인다.
    석탑 보수는 2017년 7월쯤 완료될 예정이다.

    화재청은 석탑의 1ㆍ2층 일부만 복원하고 해체 당시 모습으로 6층까지만 재조립할 방침이다.

    정비가 끝나면 석탑은 해체 이전보다 40㎝ 가량 높은 14.6m가 된다.

    미륵사지석탑은 639년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지만 목조 건축 양식이어서, 동아시아 고대 건축의 형태와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다.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 - 국보 제11호


    사찰(寺刹)에서 탑은 부처님의 신골(身骨), 즉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미륵사지 서원에 있는 것으로 동원에도 이와 같은 석탑이 또 하나 있었으며, 이 두석탑 사이의 중원에는 목탑이 있었다.

    이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미륵사에는 탑이 3기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탑의 건립은 2009년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은 639년(己亥) 백제 무왕의 왕비(사택적덕, 沙乇積德의 딸)가 발원하여 세워졌으며,

    1층 중앙 기둥에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석탑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아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단은 목탑과 같은 이중 기단이다.

    기단 위에 있는 1층 탑신의 각 면은 세 칸으로 나눠져 있고, 가운데 칸에 문이 있어 내부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사각형 기둥이 있고, 탑의 외면에는 목조건물처럼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 수법의 네모난 돌기둥이 있다.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두었고 그 위에 있는 받침돌이 지붕돌(屋蓋石, 옥개석)을 받치고 있는데,

    이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추켜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해진다.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든 것 외에는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북동쪽 부분이 6층까지 높이 16.24m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보수 · 정비 작업은 1998년 시작되었고 2016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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