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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지(黃池)연못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6. 5. 29. 05:48

    황지(黃池)연못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 황지는 처음에 천황(天潢)이라고 부르던 연못으로 황지리,

    황지읍의 이름이 나오게 한 곳이며 낙동강의 근원이 되는 연못이다.

    황지 한 가운데에 자리한 이 연못은 둘레가 100m 정도인 상지(上池)와 둘레 50m 정도의 중지(中池),

    둘레 30m 정도의 하지(下池)로 구분되며 1일 약 5,000㎥의 물이 용출되어 상수도 취수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상지(上池)는 황씨(黃氏)의 집터가 있던 자리라서 마당늪이라 하고, 중지(中池)는 방앗간이 있었다하여 방간늪,

    하지(下池)는 변소가 있던 자리라 통시늪이라 부르며 그밖에 굴뚝쏘가 있다.

    마당늪 속에 바위 절벽이 있고 그 절벽 밑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물이 솟아 나오는데 그 수굴속에 용(龍)이 살고 있다 한다.

    황지는 옛날부터 신비하고 영험한  연못으로 가물때 기우제를 지냈으며 연못속에 돌을 던지면 비바람이 크게  일어난다고 하였다.

    연못 주위에는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하여 이름난 풍수가들이  헤매었고 그 덕분에 연못 뒤쪽에는 수십기의  무덤이 생겼다.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척주지 등에  낙동강의 발원지로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옛지도에는 황지를 그려 넣지 않은 지도가 없을 정도로  황지(黃池)의 의미가 대단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




    洛東江 千三百里 예서부터 시작되다.












    황지(黃池) 못의 전설


    황지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며 둘레가 100m인 상지(上池), 50m인 중지(中池), 30m 인 하지(下池)로 된

    3개의 못으로 나뉘며 상지(上池) 남측에 깊이를 잴수없는 수굴(水窟)이 있어 수원(水源)이 된다.
    수량은 가뭄에도, 장마에도 변함없는 1일 약 500톤이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를 유지하는 해발 700m,

    이 지역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으로 전국 최적의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이다.
    고 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옛 신라문화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하며

    한민족과 숨결을 함께 한 젖줄 1,300리 낙동강을 오늘도 쉼 없이 흘려 보내는 것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때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된

    이 못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엔 원래 황씨(黃氏)성을 가진 황씨가의 옛 터로서

    주인 황씨는 않은 재산에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없는 수전노 노랭이였다.
    어느봄날 황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 시주하기를 거절 하였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이에 그만 화가 치민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 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기를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보고 부끄러히여겨

    시아지 몰래 자기가 찧은 쌀 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 해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 빌었으나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 하기를 "이집은 이미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 오시오,

    어떠한일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지금의 도계읍),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되어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밑으로 꺼져내려가 간곳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쪽을 뒤돌아보며 아기를 업은채 서 있는 돌미륵이 있어

    는 이로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하며 함께 따라간 강아지도 돌이되어 그 앞에 있다.

    또한 그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上池)이고, 방아간 자리가 중지(中池), 변소터가 하지(河池)로 변했다 하며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집터)에서 유래 된 지명이 황지(黃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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