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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내리는 월미도 문화의거리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6. 6. 20. 05:32

    비 내리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위치한 월미도(月尾島)는 섬 모양이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인데 지금은 섬이 아닌 육지로 변해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때는 일본 해군 기지와 러시아 석탄창고 등이

    잇따라 월미도에 들어서면서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던 곳이고,

    188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인천 앞바다에 정박했던 프랑스 함대의 대장 이름을 따서

    외국 지도에 로즈 섬(Rose Island)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00년 송정섭이 농상공부로부터 월미도의 개간권을 허가받아 일본인 요시가와에게 개간권을 팔아넘겼다.

    요시가와가 월미도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자 조선 정부는 송정섭을 체포한 뒤

    매각 대금을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고 개간권 반환을 요구했으나 요시가와는 응하지 않았다.

    이어 19048월에 일본군이 작전상 필요하다며 월미도에 포대를 쌓은 뒤

    19055월 민가 80여 호를 강제로 철거하고 섬 전체를 점거했다.

    특히 1923년에 1의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되면서 유원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고자 바닷물을 데워 목욕을 즐기는 조탕, 별장, 요정, 해수풀장 등이 들어섰다.

    월미도 유원지의 시초였다.

    6·25 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음을 당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1950910일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95개의 네이팜탄을 월미도 동쪽 지역에 투하하고 기관총을 쏘아대는 등 나흘간 폭격이 이뤄졌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던 군사기지였고,

    개항기에는 외국인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

    6·25 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었던 월미도가 지난 2001년 공원으로 개방되면서

    지금은 시민의 품에 안겨 월미산과 놀이동산, 문화의 거리, 카페와 횟집들이

    월미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관광지이다.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


    1950년9월15일 오전 6시30분 미 해병은 월미도의

    적색해안(Red Beach), 녹색해안(Green Beach), 청색해안(Blue Beach)으로 상륙했다.

    월미도 녹색해안에 인천상륙작전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이별의 인천항


    세고천 작사, 전오승 작곡, 박경원 노래


    쌍고동이 울어 대는 이별의 인천 항구
    갈매기도 슬피 우는 이별의 인천 항구
    항구마다 울고 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정들자 이별의 고동소리 목메어 운다.


    등대마다 임을 두고 내일은 어느 항구
    쓴웃음 친 남아에도 순정은 있다.
    항구마다 웃고 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작약도에 등대불만 가물거린다.


    마도로스 수첩에는 이별도 많은데
    오늘밤도 그라스에 맺은 인연을
    항구마다 끊고 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물새들도 눈물 짖는 이별의 인천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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