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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원 광풍각(瀟灑園 光風閣)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5. 30. 21:07

    소쇄원 광풍각(瀟灑園 光風閣)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光風閣)이라 하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어찌보면 처사로서 양산보의 삶이 마음에 맑고 깨끗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에서 계류 가에 있는 문방을 ‘마치 화방(畵舫, 채색치장을 한 유람선)과 같다’라고 하고 했던 것은

    「무이도가」의 세 번째 노래에서 가학선(架壑船, 절벽에 걸친 배)에 비유하면 그렇게 묘사한 것은 아닐까 추정된다.

    즉 ‘가학선’은 상상컨대 옛날 큰 홍수로 배가 높은 곳에서 떠내려와서 물이 빠지자 땅에 닿았으며,

    세월이 흘러 썩어서 허물어졌는데 마침 산곡에 이것이 있는 까닭으로 해서 ‘상전해수’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다.

    "소쇄원48영"에서 광풍각을 소재로 한 것으로 제 2영 "침계문방(枕溪文房)"은 머리맡에서

    개울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는 뜻인데, 시귀에 의하면 ‘창은 밝고 첨대는 맑으니 그림과 글시가 수석水石에 비치네,

    뒤엉키는 착잡한 이념, 솔개와 물고기인 양 떠돈다.’라 하여 동창이 밝아진 계곡 주변 문방에서 느끼는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1574년에 쓰여진 "유서석록"에는 광풍각이라는 명칭은 쓰여지지 않고 "소재(小齋)"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1614년에 양천운이 쓴「소쇄원계당중수상량문」에는 계당(溪堂)을 ‘침계문방’ 혹은 ‘광풍각’이라고 같이 쓰고 있어

    광풍각이 바로 ‘침계문방’ 임을 알 수 있다.

    제월당이 주인을 위한 집이라면 광풍각은 객을 위한 사랑방이라 할 수 있다.

    이 상량문에 의하면 광풍각은 1597년 불에 타버리고 1614년 4월에 중수하였다.

    또한 ‘계당’은 광풍각의 별칭으로 또 다른 시기에는 침계헌, 침계방, 수함水檻, 소함小檻 등으로 부르는 별칭이 있다.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퇴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뒷면에는 90cm 높이의 함실 아궁이가 있다.

    방의 문턱에는 머름대를 구성하였으며, 문은 삼분합의 들어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막돌허튼층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으며, 주두와 소로, 장혀, 굴도리로 결구된 평5량가구이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하였는데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은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서까래는 선자 서까래이다.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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