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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만세고개 3.1운동 만세시위지
    일상생활속에서/나라사랑 2016. 6. 30. 05:30

    안성만세고개 3.1운동 만세시위지


    1919년 4월 1일 원곡면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원래 이름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이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여러 마을에서 산발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4월 1일 연합 만세시위로 이어졌다.

    1,000여 명의 원곡면 주민들은 면사무소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친 후, 양성면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위군중은 만세고개에 이르러 재차 독립만세를 외치며 결의를 다진 후 양성주재소로 향하였다.

    원곡면 주민들은 시위를 전개하던 양성면 주민 1,000여 명과 합세하여 양성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불태우며 항거하였다.

    2001년 안성 3.1 운동기념관을 세워 그날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고 있다.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

     





    이 만세 소리

     

    이 곳 만세고개는

    그 옛날 일본식민지 통치에 항거

    이 곳 애국선열들이 불꽃 같이 일어나

    뜨거운 피로 조국 자주 독립을 외치던

    3.1 만세 운동, 그 만세 소리의 언덕

     

    지금도 생생히

    그 피끓는 만세소리 들려오나니

    오 ! 이 만세소리

    이 겨레, 이 조국에 영원하리라

     

    조국은 겨레의 터전, 겨레의 생존

    그 우리의 생존의 보금자리

    그 명예, 그 긍지, 그 자존, 그 사랑

    우리의 그 몸과 얼이려니

    어찌 이 만세소리 잊으리

     

    오! 이 곳을 지나가는 겨레여

    잠시 길을 멈추고

    이 만세소리 들으소서

     

    사람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이 만세소리 이 곳에 영원하리니

     

    대한독립 만세 ! 만세 !

    만만세 !

     

    조 병화

     

     




    만세고개의 유래

     

    이 고개는 원래 양성고개 또는 성은고개라 했다.

    3.1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4.1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이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홍창섭, 이덕순, 이근수, 최은식, 이희룡 등의 지도 아래 돌과 몽둥이 등을 갖추고 일제통치 기관을축출키로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 그 곳 주민과 합세 2,000 여명이 일제를 몰아내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 시켰다.

    (시위대는 이어 평택의 경부선 철도를 차단

    코자 했으나 일본군의 추격 정보로 해산했음)

     

    원곡, 양성의 독립운동은 평북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3.1운동 3대 실력항쟁의 하나이며

    최대의 거사였다는 사실과 이 고개 결의 등은 일제의 재판기록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 지역이 3.1 의거로 순국 24위, 피검 361명, 옥고 127명, 태형 42명, 민가소실 9동 외에

    배상, 취학방해 등의 큰 희생을 강요당했으나, 광복 후

    1993.8.5 현재 우리 정부로부터 100명이 건국훈장, 독립장, 애국장,애족장 등을 추서 받았다.

    그 위대한 독립정신과 이곳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3.1의거 이후 이 고개를 '만세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마침내 정부고시(건설부 768호 : 1991. 12. 10)로 확정된 것이다.

     

    1993년 11월 30일  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장  이택휘 고증하고...









    자유를 향한 외침, 차현주作

     

    손의 이미지와 그 위에 놓인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자유를 향해 외치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거대한 손은 제국주의를 상징하고 있으며, 위에 있는 인간은 당시의 우리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내 이름은 조선人이요, 박장은 作

     

    외세의 침입에 맞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내고자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백성들을 향하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미지화 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루고자했던 조상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안성 3.1운동기념관 "광복사(光復祠)" 

     

     

    광복사(光復祠) 사당(祠堂)은 1919년 3.1운동 당시 안성지역에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 25분과 온갖 고초를 겪으신 애국지사 205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우리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빌고

     

    불굴의 독립정신과 겨레를 위한 희생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이 곳은 우리나라 3·1운동의 3대 항쟁지 중 하나이다.

     

     






























    안성 4.1만세운동의 특징

     

    1.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3.1 운동 당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만세운동 중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과 함께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 손꼽히며 그 중 가장 으뜸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2. "2일 간의 해방"을 쟁취

    당시 면 사무소, 우편소, 경찰관 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응징하여 무력화시키고

    일본인을 몰아내어 전국에서 유례가 없는 "2일 간의 해방"을 쟁취했었다.

     

    3. 농민들이 주축이 된 항쟁

    항쟁의 중심세력이 지식인들이 아닌 농민들이 주축이었고 2,000 여 명이 조직적으로 독립항쟁을 전개하였다.


    4.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 발생

    순국 및 옥고를 치른 분들의 수가 127명으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5. 민족대표 33인의 재판에 인용

    일제는 3.1운동을 대규모 폭동으로 간주하기 위하여 민족대표 33인의 재판 과정에서 안성 지역의 사건을 인용하였고,

    안성 사건 관련자는 민족대표 33인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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